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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Mar 03. 2024

길치에서 벗어나는 방법


나는 ‘길치’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어딘가에 운전하고 갈 일이 생기면 길눈이 밝은 남편에게 늘 길을 물어봤다. 알려준 길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하고서 출발했다. 그래도 가다 보면 길을 잘못 드는 일이 종종 생겼다.   

  

첫 직장에서의 일이다. 한번은 출장 온 일본인 부장을 데리고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구매팀과 하는 미팅에 참석해야 했다.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로는 여러 번 다녀왔던 곳이나 내가 직접 운전하고 가는 건 처음이었다. 길치인 나에겐 내가 운전하고 간 길이 아니면 처음 가는 길과 다. 더구나 일본인 부장을 데리고 가는 길이다 보니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미팅을 앞두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가는 길을 여러 번 시뮬레이션해 봤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마지막에 수원으로 빠지는 길만 헷갈리지 않으면 된다.   

   

미팅 당일, 긴장감을 안고 출발했다. 문제없이 고속도로를 탔고 얼마간은 순조로웠다. 이런! 부장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순간 빠지는 곳을 놓칠 뻔했다. 갈림길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고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일본인 부장이 갑자기 손잡이를 꽉 잡았다. 한껏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다행히 차 한 대가 양보해 줘서 무사히 끼어들었다.

    

“박상, 다이죠부? 오레 빗꾸리시따몬.”(박씨, 괜찮아? 나 깜짝 놀랐어)     


나도 식겁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빠져나가는 길을 놓쳤다면! 아,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 내 주차타워에 자리가 없어 이중으로 주차된 차 사이를 몇 차례나 뱅글뱅글 돌며 오르락내리락했다. 겨우 빈자리를 발견했고 다행히 늦지 않게 미팅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날 회식 자리에서는 나의 운전 실수가 단연 도마 위에 올랐다.    

  

길치 인생의 고단함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모르는 길도 찾아가지만, 갈림길에서 지도를 착각하여 다른 길로 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매한가지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약속 장소까지 지도를 보면서 가도 방향을 헷갈리는 일이 허다하다. 주변을 몇 번이나 맴돌다 결국 전화를 걸어서 물어본다. 길치가 아닌 사람은 쉬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글쓰기에서도 자주 길을 헤맨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글을 써 내려가다가 갑자기 멈춘다.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싶은 건지, 어떤 메시지를 넣어야 할지 의문에 빠져든다. 혹은 원래 가려던 목적지는 ‘길치’였는데 ‘갈치’로 가고 있는 일도 있다. 그럴 땐 내비게이션에 정확한 목적지를 찍고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라고 글쓰기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난 뭔가 이야기가 떠오르면 일단 쓰고 보는 식이다. 주제는 염두에 없이 무작정 출발. 목적지가 없으니, 글이 자꾸 멈출 수밖에 없다. 목적지가 있어도 어느 길로 갈지 선택하고 선택에 맞는 시간과 방법으로 운전해야 한다. 고속도로에서 규정 속도를 지켜야 하고 학교 앞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앞과 좌우를 잘 살피며 반드시 서행해야 하듯이.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옆 차들이 다 나한테 달려드는 것 같았다. 속도가 느리니 차들이 빵빵거렸다. 특히나 버스 기사나 택시 기사 중에는 욕을 하는 사람도 있어서 운전하기가 무서웠다. 차선을 바꾸기도 쉽지 않아 직진만 하느라 목적지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다. 이런 단계를 넘어서려면 자꾸 운전해서 감을 늘리는 밖에는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의 감을 늘리기 위해 나는 수없이 써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길로도 가보고 저런 길로도 가보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나에게 맞는 글쓰기 운전법을 터득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길도 차츰 익숙해져 길을 헤매는 횟수도 줄어들고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달하는 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안고 오늘도 글쓰기 액셀을 밟고 출발.      



#길치 #글쓰기 #쓰고또쓰고 #언젠가는 #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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