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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13. 2024

나의 그에게


오늘, 그가 또 찾아왔다. 그는 종종 나를 찾는다. 어쩔 땐 그가 감당되지 않는다. 그동안 잘 참아냈다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팽팽한 시간의 줄을 서서히 풀어 놓을 즈음 느닷없이 그는 등장한다. 잠깐 얼굴만 보여주고 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나는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은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함께 있기를 강요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렸을 땐 그에게 자주 졌다. 싸워서 보란 듯이 이겨보고 싶었지만 언제나 나의 패배로 끝났고 뒤끝은 오래갔다. 억울함과 수치심은 그를 내 곁에 더 오래도록 붙들어 놓았다. 세월이 가고 나도 자랐다. 더는 그에게 지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었다. 그런대로 버틸 만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찾아와도 이내 떨쳐내려 애썼다. 그는 무심하게 나를 지나쳤고 그가 떠난 자리에는 휴지 뭉치만 수북했다.      


감당하기에 버거우면서도 가끔은 그가 와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그가 절실해지면 나만의 방법으로 그를 부른다. 그가 좋아할 책이나 영화를 준비하고. 그는 나의 부름을 외면하지 않고 찾아온다. 그는 꼭 나쁜 존재만은 아니다. 때로는 아픔을 가져가 주기도 하고 후련함을 선물하기도 하고 기쁨을 데리고 오기도 하니까.      


어렸을 때는 나의 가장 나약함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생각에 그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는 그와의 거리 조절이 가능하다 자신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아이처럼 나는 겨뤄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힘없이 지고 만다. 지금은 그에게 지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는 밀어내야 하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의 가장 순수함을 밝혀주고 회복시켜주는 존재니까. 내가 인간다운 인간임을 상기시켜주는 존재니까. 그가 내 곁에 없다면 난 무미건조한 사람이 될 테니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그를 기꺼이 곁에 두기로 한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아플 때도 세상과 이별할 때도 그가 나와 함께하리라 믿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이 가을 나는 그를 자주 찾을지도….

나의 그, 눈물을.




#나의그 #눈물 #뗄레야뗄수없는관계 #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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