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하얗게 타들어 간다. 내 몸은 더위에 짓물러 아우성친다. 진땀이 흐른다. 무더위를 느끼는 데에는 지금 내 머리 길이도 무관하지 않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둘째가 돌을 지나고 나서부터 머리 모양은 짧은 단발이나 커트를 유지해 왔다. 한 번 자르기 시작하니 점점 짧아져서 짧은 머리로 산 지 근 이십 년이 되어간다.
문득 머리를 길러보고 싶어졌다. 친구의 단골 미용실 원장이 권해준 스타일에 마음이 동한 까닭이다. 겨울에는 좋았다. 어깨에 닿는 정도의 길이지만 은근히 보온 효과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여성스러워진 느낌도 들었다. 여름이 되니 자를까 말까 갈등의 연속이다. 머리가 목을 덮으니 덥다. 그냥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날씨에 목에 감기는 머리가 불쾌지수를 부추긴다.
긴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사람도 짧은 머리가 낫다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지금 머리 모양이 예쁘다고 하는 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물며 더위까지 무릅써 가며 자르지 않고 이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이다. 내가 마음에 드니까 어떤 불편도 감내하는 것이다.
글쓰기도 비슷하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마치 겨울에 긴 머리가 어깨를 덮어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듯 글쓰기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 길이가 길어지자 여성스러워진 느낌에 기분이 좋아지듯 글쓰기도 그랬다. 너도 이런 걸 좋아해! 내가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기쁘고 설렜다.
글쓰기 여름은 덥고 고통스럽다. 좋게만 느끼던 감정은 희미해지고 힘들고 괴로운 감정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런데도 글쓰기를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다. 왜일까. 그렇게 덥고 힘들면 잘라내면 될 것을. 내 글을 잘 썼다고 좋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보완할 점을 조언해 주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그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과연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맞을까.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수시로 서성인다. 부정적인 생각은 닦아도 닦아도 쌓이는 먼지 같다. 그런데도 여전히 글을 끼적거리고 있다. 잘라내고 싶지 않은 그만두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글쓰기의 무더위쯤은 감내하겠다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여전히 덥기는 하지만 이제 곧 목을 덮는 머리 길이가 불편하기보다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것이다. 글쓰기도 계절을 탈 뿐이다. 여름의 무더위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때도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처럼 글쓰기에도 산드란 바람이 불어올 날이 있을 것이다.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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