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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13. 2024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눈이 계속 등장한다. 성근 눈,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 흰 실밥 같은 눈송이들, 눈보라, 먼바다 위의 눈구름, 수천수만의 새떼 같은 눈송이들, 녹지 않는 눈송이들, 수많은 흰 새들이 소리 없이 낙하하는 것 같은 함박눈, 폭설 같은 표현으로. 이 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이리 자주 등장하는지 의문이 싹텄다.    

  

책을 읽는 도중에 영화 <더 룸 넥스토 도어>를 봤다. 거기에도 눈이 등장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 중인 주인공 마사. 병문안 온 친구 잉그리드와 병실에서 대화를 나누다 창문으로 내리는 눈을 본다. 기후 변화로 핑크빛으로 내리는 눈을. 어느 날 마사는 친구에게 한 소설의 문구를 읊조린다. “눈이 내린다 … 산 자와 죽은 자의 위로” 마지막에 잉그리드가 이 문구를 다시 읊조리며 영화는 끝난다.  

    

왜 <작별하지 않는다>도 <더 룸 넥스트 도어>도 눈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눈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담겨 있길래. 궁금증이 눈처럼 소복이 쌓여갈 즈음 우연히 그 답을 찾았다. 한강 작가가 쓴 <흰>이라는 소설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다. 그는 말한다.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배어 있다.”   

   

삶과 죽음이 흰 눈에 소슬하게 배인, 희게도 아픈 소설이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따뜻한 체온과 만나면 녹지만 온기가 식어버린 몸과 만나면 살얼음이 낀다. 눈은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른다는 사실을 소설은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경하는 한강 작가가 자신을 이입해 쓴 인물 같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에게서 작가의 모습을 발견한다. 바로 인선의 어머니 강정심 씨다. 자그마한 키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음성이 고와 마치 아직 소녀인 채로 늙은 사람 같다고 묘사한 바로 그 어머니. 그런 외모와 달리 인내와 강단을 가진, 내면이 누구보다 강한 그녀라는 것이 뒤로 갈수록 드러난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134쪽)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311쪽)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분투한 인선의 어머니. 사랑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강정심 씨가 오빠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그 험난하고 고된 여정을 인선의 입을 빌어 들으며 생각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참혹한 자료를 마주해야 했을까.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잔인한 진상들을 흡수하고 순화해서 아름다운 그만의 언어로 표현해내기까지의 지난한 시간.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내고 끝끝내 완성해낸 이 글은 결국 사랑의 결정판이 아닐까. 피 묻은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을 눈처럼 희고 고운 마음으로 감싸는, 여전히 작별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을 위로하는 그런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하와 인선의 대화는 생시인 듯 환시인 듯 불분명하다. 하지만 “(성냥개비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우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이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희망을 읽는다. 희망의 불꽃을 잡고 그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리라.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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