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화국] 1000/60

서울에서 살아가는 대학생이 보고 느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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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8월의 어느 날, 민지는 아침 댓바람부터 분주하다. 본인의 몸집만 한 우체국 박스를 들고 나르기를 반복한다. 오늘은 드디어 그녀가 꿈에 그리던 자취 라이프가 실현되는 날이다. 학교 기숙사에서 자취방까지, 도보 10분이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막내딸의 성공적인 자취 시작을 돕기 위해서 대구에서부터 온 가족이 총출동한다. 아빠는 뽑은 지 몇 달이 채 안된 본인의 새 차를 기꺼이 막내딸의 이삿짐을 옮기는데 내어준다.

“야 너는 무슨 짐이 이렇게 많은 거야?”

“그러게… 분명히 기숙사 처음 들어올 때는 두 박스 밖에 안 됐는데”

“한 번에 다 싣지도 못하겠네”

“… 이사 가면 다 버릴게”

가뜩이나 새벽부터 다섯 시간을 운전해 대구에서 올라오느라 피곤해진 아빠의 심기를 민지의 이삿짐 박스들이 다시 한번 건드리고 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이렇게 짐이 불어 났는지, 이사 간 집에서는 정말 극강의 미니멀리스트로 살 것이라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스스로에게 하며 민지는 본인의 짐들과 함께 아빠의 차 ㅂ뒷자리에 구겨져 새로운 집으로 향한다.


대학교 인근 자취방은 종강 혹은 개강 즈음이 되면 방을 구하려는 학생과 학부모들 간의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진다. 민지도 이러한 일명 ‘방 구하기’ 경쟁에 휘말려 한동안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여 해당 부동산에 전화를 걸면

“아, 그 방은 방금 전에 빠졌는데 어쩌죠?”

라는 답변을 듣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한 날 오후에 점찍어둔 집을 보러 가기로 부동산 아주머니와 약속하고, 함께 집을 보기로 한 민지의 엄마가 대구에서부터 KTX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 그 점찍어둔 집을 누군가 계약해 버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기도 하였다. 그렇게 유명 아이돌 티켓팅에 버금가는 방 구하기 경쟁 끝에 얻게 된 민지의 자취방은 학교에서 불과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육십만 원, 관리비 7만 원짜리 원룸이다. 민지의 자취방 건물 주위에는 수많은 원룸들이 즐비해있는데 정말 전형적인 대학교 원룸촌의 모습이다. 뒷좌석에 구겨져 원룸촌 골목을 지나가며 민지는 저 건물들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방 구하기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아닐까라는 일종의 경외심을 마음속에 품는다.

민지의 새로운 자취방은 3층이지만 엘리베이터는 없기 때문에 민지와 가족들은 커다란 박스를 1층 현관에서부터 계단을 타고 옮긴다. 민지는 또다시 자기 몸집만 한 상자를 3층까지 나르며 다음에 이사 갈 때는 무조건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가리라고 마음먹는다. 민지, 부모님, 그리고 오빠, 이렇게 온 가족이 부지런히 짐을 나른 끝에 짐 옮기기는 얼추 마무리되는 듯하다.


다섯 평이 채 안 되는 좁은 방 안에서 가족들은 각자의 일들로 분주하다. 아빠는 비인지도 땀인지도 모를 것들에 젖은 꿉꿉한 몸을 씻어내기 위해 욕실로 들어가고, 오빠는 발 디딜 틈 없는 집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신발을 신은 그대로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휴대폰을 한다. 우리 집의 살림꾼 엄마는 막내딸의 홀로서기가 영 걱정되는지 집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본인이 25년간 쌓아온 살림 내공을 침을 튀겨가며 민지에게 전수하기 바쁘다. 정작 당사자는 진이 쪽 빠져 아직 커버도 씌우지 않은 침대 매트리스에 대자로 뻗어 멍 때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느새 점심 때도 훌쩍 지나버린 오후, 민지는 흔쾌히 자신의 용돈 일부를 털어 본인을 위해 수고해 준 가족들에게 늦은 점심을 대접하기로 맘먹는다.

“이삿날에는 자장면이지.”

어디서 보고들은 건 있는 민지가 이삿날에는 배달 어플을 켜며 자장면을 찾는다. 민지의 기억 속 마지막 이사는 약 10년 전 그녀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이 마지막이다. 심지어 그날은 아빠는 출근, 오빠와 민지는 등교를 한 평일이었기 때문에 가족들 중 이삿짐을 나른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사실상 민지의 이사 경험은 처음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10년 전, 채 정돈이 되지 않은 집 식탁 한편에서 엄마가 차려준 즉석 카레를 불평 없이 먹던 초등학교 4학년이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식사를 대접하다니, 비록 본인들이 준 용돈으로 식사를 대접받는 꼴이겠지만 부모님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다.

민지는 배달 어플을 켜 <중식> 메뉴로 들어간다. 가장 위에 있는 식당을 클릭해서 대충 짜장면 네 그릇을 주문한다. 네 그릇이나 시켰으니 군만두쯤은 서비스로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토록 기다리던 자장면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방 안 이곳저곳에 퍼져 각자 할 일을 하던 가족들은 일제히 모여 최고의 식사를 위한 세팅을 시작한다. 세팅이라고 해봤자 비어있는 우체국 박스를 뒤집어 식탁으로 탈바꿈하는 것밖에 없긴 하지만 말이다.

민지네 가족들은 식탁(이라고 쓰고 박스라고 읽는다)에 둘러앉아 각자 눈앞에 놓인 자장면 한 그릇을 흡입하기 시작한다. 마치 주유소에서 차들이 주유받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민지는 생각한다.

“맛이 없는데”

잠자코 자장면을 먹던 오빠가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그렇다. 맛이 없다. 자장면의 생명은 면발이건만 면이 먼 길을 돌아왔는지, 원룸촌만이 가득한 이 동네에서 사장님이 자장면 4인분 배달만큼은 익숙하지 않으셨던 것인지 면발이 다 불어있다. 민지는 머쓱하게 웃는다. 이름도 모른 채 배달 어플 가장 위에 있는 중국집에서 시킨 자장면이지만 앞으로는 여기서 시키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자동차들도 종류에 따라 경유가 적합한지 휘발유가 적합한지가 다른 것처럼, 사람도 이삿날에 각자 먹어야 하는 음식이 다른가보다.

자장면에 대한 불평이 이어질 무렵, 조용히 본인에게 할당된 자장면을 다 먹은 아빠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기 위해서 일어난다.

“아.”

민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네 가족의 식사 자리로도 비좁은 바닥 틈을 이리저리 밟아 가던 아빠가 자장면을 먹던 민지의 등을 치고만 것이다.


보증금 1000에 월세 60, 다섯 평이 채 되지 않는 방 안에서 민지는 그냥 이 방안에 있는 모든 게 싹 다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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