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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Aug 15. 2023

아가미 없는 자의 우울

프리다이빙 체험기



어떻게 물을 좋아하겠어, 바다를 좋아하는 거지




생각해 보면 바다가 주는 이미지와 그 풍경이 좋았던 거지 물이 좋았던 적은 없다. 튜브를 타고 있더라도 꼭 발이 닿는 깊이에서만 놀곤 했다. 그러다 마지못해 생존을 위해 수영을 배웠었다. 아무리 수영장의 깊이가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라도 얼굴을 수영장 바닥에 향하게 하면 그때부터 불안이 찾아왔다. 수영을 배우려면 머리를 물속으로 넣어야 하는데 그게 무서우니 진도가 잘나지 않았다. 기본자세부터 두려우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 딴에는 머리를 푹 잠기게 넣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귀는 물 밖으로 나와 있던 적이 많아서 머리를 물에 넣는 일부터 연습이 필요했다. 제일 밑바닥이 어디인지 확인되더라도 물속에 있는다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었다.



작년에는 뭔가에 홀린 듯 온갖 종류의 원데이 클래스를 섭렵하고 다녔다. 눈에 보이는 건 다 할 작정으로. 하고 싶은 것보다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원히 못 할 것 같은 것들을 마음먹고 하나씩 해나가고 있었다. 그중에서 프리다이빙은 마지막에 해당하는 일 중 하나였다. 수영장에 안 가지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는 걸 고려한다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두려움 너머에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로망과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혼자가 아니야




수영복만 챙기면 각종 장비를 대여해 주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잠실 수영장으로 향했다. 비가 와서 스산한 수영장 입구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프리 다이빙은 말 그대로 산소통 같은 다른 도구의 도움 없이 이루어지는 다이빙이기 때문에 혈혈단신의 몸으로 물에 들어가지만, 불편한 수트를 입은 몸은 물에 닿기도 전에 천근만근이었다. 수트 착용만으로도 불편했는데 얼굴에 마스크와 스노클을 끼자, 불편감은 더해졌다. 강사님 본인이 수영을 못 한다는 사실로 겁먹은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의아함만 생길 뿐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먼저 호흡법을 배우기 위해 풀장 가장자리 수심이 얕은 곳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수영장 건물에 들어왔을 때도 수트를 입고 수영장에 발을 담갔을 때도 느껴지지 않았던 현실감이  연습 시작과 동시에 몰려왔다. 겁도 많은 게 왜 여기 왔을까. 혼자 왔으면 도망갔을 텐데 다행히 같이 온 친구가 있어서 조금 더 용기 내보기로 했다. 벽을 잡고 무릎 아래 수영장 바닥이 닿는데도 무서웠다. 익히 알던 수영장보다 사람이 많고 그 사람들 대다수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였을까. 눈코입이 얼굴에 잠기게 물속으로 들어가 틀어막혀진 코를 무시한 채 스노클로 숨 쉬었다. 그러자 주변 소리는 점차 잦아들고 귓가에는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무서움이 극에 달했는지 아니면 물이 차가워서 그런지 벽을 잡고 있는 손이 바들 바들 떨렸다. 시작부터 이러면 수심이 깊은 곳은 어떻게 들어가나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때 따뜻한 손 하나가 내 오른손 위로 다가와 토닥토닥 안심시켜 주었다. 그 손은 수업 초반에 인사했던 ‘버디’의 손이었다. 프리다이빙할 때 ‘버디’라고 응급상황을 예방하거나 대처할 수 있게 프리 다이빙에 능숙한 분들이 초보 수강생들 근처에 있었다. 버디들과 수업은 같이 받지 않지만 잠수할 때는 같이 행동하기 때문에 수업 초반에 얼굴을 익혔었다. 그 손길로 인해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물속에서 더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버디는 겁먹지 말라며 말을 걸어왔다. 문득 낯선 이의 온기와 음성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수영장 아래에서 노는 법을 나는 몰라




그날 원데이 클래스를 듣는 수강생은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이었다. 스노클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주어진 다음 목표는 수영장 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것이었다. 부표에 매달려 스노클을 통해 호흡을 고르다가 자신의 순서가 오면 수영장 바닥까지 연결된 줄을 따라서 가능한 깊이까지 갔다 오기. 나에게는 부표를 잡고 있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차례가 아닌 나머지 사람들은 부표를 손으로 잡고 얼굴을 수면 아래로 둔 채 몸을 물에 둥둥 띄워 부표 아래 사람이 오르고 내릴 때 충돌하지 않게 피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겁에 잔뜩 질려 몸을 띄우려고 하면 다리 쪽이 가라앉아서 자꾸만 수면에 수직으로 떠 있게 돼버리거나 겨우 부표에 상체를 얹으면 몸과 함께 부표가 가라앉으려고 했다. 강사는 사고 위험 때문에 조심하라고 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물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인 걸 안 강사가 긴장을 풀면 뜰 수 있다는 당연한 말을 해줬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사자인 나보다 본인이 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나무라는 듯한 말로 대화를 끝내고는 수업을 진행했다. 결국에는 혼자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부표를 잡고 물속을 바라보았다. 수영장 아래에서는 저마다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산소통을 메고 돌아다닌다거나 잠수하기 위해 물 아래로 내려가거나 혹은 수강생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거나. 각자의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지상에서의 모습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 모습들을 지켜보기 위해서는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는 점만 빼고는. 핀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헤엄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밥을 먹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공간이라면 나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간에 물이 차 있지 않았다면 수영장 바닥까지 가는 건 쉬운 일이다. 바닥에 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바닥에 계속해서 머무르며 걸을 수도 있다. 그저 이 공간에 물이 차 있을 뿐 수영장 밖과 같다. 그런 생각들이 불현듯이 들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이 공기처럼 편안해졌다.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내려가는 간다는 생각에 좀 더 침착해질 수 있었다.



평온해진 마음으로 요동쳤던 몸의 움직임을 가라앉히며 수면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처음이라는 미숙함과 떨쳐내지 못한 두려움 때문에 첫 번째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지만, 두 번째는 훨씬 나았다. 그때는 처음보다 더 깊이 더 차분하게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달라진 건 마음가짐이었다. 좀만 더 가면 수영장 바닥을 손으로 짚을 수 있었는데 귀가 찢어질 듯한 통증에 무리하지 않고 줄을 위로 향하게 잡고 떠오를 준비를 하였다. 몇 십 분 전을 생각하면 대단한 발전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수면으로 올라오는 동안 주변에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만 같았다. 



수업의 마지막 관문은 부표와 줄 없이 자신의 힘으로 잠수를 해낼 차례였다. 부표를 잡지 않은 상태에서 손을 수중에 뻗고 있다가 준비가 되면 복부에 힘을 주어 상반신을 접어 물 아래로 향해서 잠수한다. 역시나 혼자서는 잠수하기 어려워 강사가 목에 가까운 등 쪽을 물 아래로 밀어주면 온몸을 양옆으로 뒤뚱거리며 물 아래로 들어가 본다. 발을 움직여 동작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 걱정스러웠다. 숨을 참고 몸을 움직이면 금방 숨이 찰 텐데. 이미 머리를 물 아래쪽으로 숙이는 것도 무서웠던 나는 재빨리 방향을 틀어 수면 위로 오르려고 했다. 분명히 수트의 부력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뜬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위로 떠오르는 속도는 더뎠고 그 몇 초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아까와 같이 답답해하는 강사를 보며 깊게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수면에 가까운 높이에서 핀을 굴리며 헤엄치다 벽 쪽으로 가서 쉬었다. 



동행한 친구도 다이빙은 처음이고 심지어 수영도 못 한다고 해서 동질감을 느꼈는데 시간이 갈수록 친구와 나의 실력은 벌어졌다. 친구는 나와는 다르게 겁먹지 않았다. 프리다이빙이 처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모든 동작을 능숙하게 해나갔다. 인어처럼 헤엄치는 수강생들을 보면서 왜 나는 저러지 못할까 비교하게 되고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그들의 놀이터처럼 유유히 물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벽을 잡고 서는 것도 무서운데. 물속을 본인들만의 세상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해받지 못할 사람이었고 물과 친해지기에 남은 시간과 일정이 여유롭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성공하고 싶었지만, 언제가 언제일지 모르는 상태로 물에 흠뻑 젖은 몸을 수영장 밖으로 이끌었다.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그날 밤 자려고 눕자, 물 위에 떠 있던 오후의 감각이 살아났다. 내가 있는 곳은 뭍인데도 배영 자세로 물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귀에 물이 참방참방 들어왔다 나왔다 하면서 등 대고 있는 바닥이 딱딱한 고체가 아니라 액체로 바뀌어서 가라앉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수영장에서의 일이 떠오르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긴장된 몸 때문에 지금도 가라앉는 중인지 귀까지만 차 있던 가상의 물은 어느새 코 밑에서 참방거리다가 이내 코안 쪽까지 들어와 숨을 막히게 했다. 있지도 않은 물을 코안에서 털어내고 다시 천천히 숨을 내쉬고 들이쉬어 본다. 아직도 무언가가 막혀있는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여러 번 시도 끝에 되찾은 호흡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물속에 있는 듯했다. 끝없이 가라앉는 느낌에 오늘 밤, 잠을 잘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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