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에서 바라본 풍경
내가 이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풍경이었다. 전에 살던 오피스텔은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곳에 있다 보니 조망권이 없는 환경 안에 있었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면 맞은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밀접하게 알 수 있는 그런 분위기. 본가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던 하늘은 창문에 딱 붙어 고개를 내밀어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일 년 남짓한 기간을 지내면서 창문 풍경이 삶의 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었다. 오피스텔에서 배우게 된 점을 고려해서 집을 알아봤지만 풍경은 충분한 돈이 있어야지만 따라온다는 진리를 마주했다. 가진 자본력으로는 침실에서 좋은 경치를 볼 수 있지만 방 구조가 오각형인 이곳이 최선이었다. 침대를 창문 방향으로 배치해도 바깥 풍경을 정면으로는 볼 수 없지만 비스듬히 옆으로 서서 보는 느낌이 나름의 멋이 있었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조망권을 얻게 된 후로 언제든 창문을 열어놓았다. 예전처럼 애쓰지 않아도 침대에 앉아만 있어도 자연을 만날 수 있었다. 창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으면 가로수를 볼 수 있고 창문 가까이에 앉으면 구름까지 보였다. 언제 저렇게 잎의 색이 바뀌었는지, 얼마나 많이 꽃이 피고 잎이 떨어질지 따위를 궁금해하다가 하늘로 시선을 돌렸었다. 하늘을 볼 때면 같은 프레임에 걸리는 건물의 지붕과 전깃줄은 구름을 속도감 있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되었다. 아까는 오른쪽 지붕에 닿을락 말락 했는데 지금은 왼쪽 전깃줄을 지나가고 있는 구름.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는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은 금세 지나가 있었다.
어느 날 퇴근 후 어김없이 창문을 열어두었는데 갑작스럽게 비가 내렸다. 음악을 틀어 놓지 않아서 다행히 금방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창문을 닫으려고 창가에 가까워졌을 때 집 앞 가로등이 보였다. 비가 오는 게 분명했지만 밖이 어두워 가로등이 없는 곳에서는 빗줄기가 분간이 안 됐다. 빗방울의 형태가 드러나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만 비가 내리는 듯했다. 마치 가로등으로 빛을 비추는 곳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 모습이 해바라기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보여 누군가가 물을 틀었을까 이상한 상상을 하다가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창문을 닫았다.
또 다른 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빗소리가 들려 또 무슨 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만 들으면 거센 빗줄기여서 소나기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게 빠른 속도로 창문으로 갔었다. 그러나 방충만 너머에는 맑은 하늘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온다고 착각했던 소리는 나뭇가지와 잎이 가까이 있는 서로에게 몸을 부딪치며 내는 소리였다. 그들은 바람에 씻겨 내려갈 때도 물방울을 닮은 음을 내는구나. 자연스러운 그 움직임에 귀와 눈이 정화되어 한동안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며 창가에 서 있었다.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외투는 필요 없는 날씨였는데 어제오늘은 패딩과 목도리가 없으면 밖을 나설 수 없는 추위가 찾아왔다. 냉기 때문에 이전처럼 창문을 마음껏 열 수가 없어졌다. 창문에 붙여놓은 뽁뽁이 때문에 창문을 열지 않고는 풍경을 보지 못한다. 이제 방안에는 신선한 바람도 고즈넉한 풍경도 자연의 지저귐도 남아 있지 않다. 언제쯤 다시 창문을 열어둘 수 있을까. 당분간은 핸드폰 화면 너머 풍경으로 만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