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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Jan 02. 2024

살아있는 죽음

친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친할아버지는 평소에 전화 한 통도 없고, 명절에 방문해서도 사근사근하게 굴지 않는 손녀를 항상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할아버지는 만날 때마다 나이를 물어보셨다. 매년 한 살 더 먹은 나이를 말하면, 예상치 못한 답을 들었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벌써 그렇게나 많이 (나이를) 먹었어?”


한해 한해 지날수록 몸집은 커지고 얼굴은 달라져만 가는 데 할아버지 눈에는 여전히 나는 아이로 보이는 듯했다.




-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맨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일이 번거로워지겠구나’ 였다. 다음날 있을 과외를 할 수 없다며 학부모님께 문자를 하고, 조부상으로 인해 다른 날 중간고사 볼 수 있는지 교수님께 문의해야 했다. 상실에 대한 슬픔보다는 일정 차질에 피곤함을 생각하고 있는 내가 참으로 쓰레기 같았다. 인간이긴 한 건가.



친할아버지 장례식은 죽음에 대해 인지하고 있을 시기에 처음 겪는 장례식이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어린 나이라 죽음이라는 게 뭔지 눈을 감은 할머니가 다시는 눈을 뜰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주위 어른을 모방해서 있는 힘껏 눈을 찡그리고 비비고를 반복했었다. 그때와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은 저절로 눈물이 났다. 조용히 눈물만 훔칠 뿐 인 나와는 다르게 옆에서 혼절할 것만 같은 엄마를 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대학 동기의 장례식이라면 오열하지 않았을까.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혈육이라도 나눌 추억이나 기억이 없다면 유전적 일치도는 친밀도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둘째 날 진행되는 염을 위해 안치실 옆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의자에서 보이는 저 문턱을 넘으면 할아버지가 차가운 스테인리스 위에 누워계실 터였다. 기억하는 한 대기실은 스테인리스의 은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염을 해야 하는 공간의 특성상 온도가 낮았는지 손이 오들오들 떨리고, 치아가 서로 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냈다. 뼛속을 애는 듯한 추위가 느껴졌다. 온도에 대한 반응인지 심리적인 오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아껴주었던 할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추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안치실에는 대기실보다 더한 추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되었다는 장의사의 말에도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에게 여기 있겠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혼자만 대기실에 있으면 귀신이 붙는다는 비과학적인 믿음을 근거 삼아 억지로 데려가려고 했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게 좋다며 달래는 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유를 대는 엄마에게 화가 났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실에 혼자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동생의 팔을 지팡이 삼아 눈을 감고 걸어갔다.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용기가 없었다. 안치실에 들어가서도 할아버지를 등진 채 동생 품 안에 딱 붙어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것만큼 눈을 감고 있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주위에서는 친척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보이지 않으니 불안한 생각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그럴수록 동생의 팔을 더 세게 잡았다. 정신이 아득해져서 혼자 힘으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그때 당시에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내가 느낀 공포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공포는 처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죽음의 존재에서 생겨났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전까지 죽음은 책 속에 있는 활자나 말속의 묻어나 있는 단어일 뿐이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된 나이에서야 죽음이란 단어가 생명력을 갖고 눈앞에 나타났다. 훗날 그리워하게 될 모습을 보게 하지 못하고 죽음 앞에 나약하게 눈을 뜨지 못하게 하였다. 영혼이 떠나가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모습을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인생이라는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할아버지를 배웅하는 장소가 아니라 죽음과 처음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죽음이 두렵다. 가까운 사람들의 상실은 상상하기 싫고, 나 역시도 죽고 싶지 않다. 언제쯤 죽음이란 자연의 섭리이며, 죽음은 생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이제는 눈을 뜨고 지켜볼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사라진 생에서도 나는 눈을 뜨고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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