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나의 일상은 숨이 차거나 슬픔이 차오르는 일의 반복이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빠르게 뛰는 심장의 고동과 그 박자에 맞춰 오르내리는 전신이 느껴졌다. 왜 이리도 호흡이 급한 건지 생각하다 보면 턱 끝까지 차올랐던 숨은 서서히 어깨, 가슴께를 지나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는다. 가빠진 호흡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슬픔이 뒤따라왔다. 공백을 허용할 수 없다는 듯이 찾아온 슬픔에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픔이 속에서만 삭는 날이면 마음은 더 엉망이 되었다. 차라리 울기라도 하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정상적인 호흡과 기쁨의 상태에 도달하는 건 묘연해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유도 없이 이러는 내가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인이 될 만한 일을 만들었다. 바쁘게 바쁘게 내 심장처럼 몸을 움직이고, 일부러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갖은 방법을 쓰다가 지쳐 버려 슬픔에 모든 걸 내던지면 그 끝에는 공허가 찾아왔다. 공허는 추위를 데리고 왔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몸에 바람이 드는 듯 같았다. 특히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시렸다.
참을 수 없는 공허함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심해졌다. 있지도 않는 그 구멍이 커지는 걸 느꼈다. 구멍을 만진다면 가장자리부터 바스러져 빈 곳이 더 커지겠지. 조금씩 자라는 구멍이 진짜로 존재할까 봐 더 빨리 커질까 봐 구멍으로 통과하는 거센 바람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눈물에 가라앉는 게 먼저일지 구멍이 점점 커져서 결국에는 사라지는 게 먼저일지 궁금했다.
원인을 알아내려 하기보다는 구멍을 메우려고 노력했다. 많은 사람이 택하는 뭔가 있어 보이는 길을 따라갔다. 생각 없이 행동하기는 쉬웠다. 그러나 나를 채울 수 있는 어느 것 하나 찾지 못했다. 지나온 길에 생겨난 성적, 포스터, 논문, 보고서, 학벌, 학력, 명함. 영혼 없는 빈 껍데기들이었다. 프린트에 쓰인 잉크와 종이가 아까웠고, 정보 저장에 쓰인 전기도 아까웠다. 결과물에 따라온 칭찬도 모두 덧없었다. 불안감이 떠오를 때 성과들이 안정감을 준 건 사실이지만 그건 포근한 안락함보다는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전함에 가까웠다. 그러면 나는 무탈함에 만족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깨달음을 얻는 순간은 갑자기 찾아온다고 했던가. 어느 것도 내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무용한 날들 속에서 댄서들의 무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춤 실력보다 더 눈에 들어온 건 그들의 의미 있는 몸짓과 자유로움이었다. 몇십초 간 이어진 영상에서 그들이 성대의 진동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목소리를 택했음을 깨달았다. 몸짓이 언어가 되는 순간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들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향해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나는 언제 목소리를 냈는가. 여태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나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번도 나를 보인 적 없는 시간이 허무함을 만들고 있었다. 이제껏 나는 침묵의 삶을 살았었다.
몸짓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됐다면 활자로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에게 춤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글이 있었다. 글은 하나도 덧없지 않았다. 글이 벌이가 되거나 하다못해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었다. 글이 내가 될 수는 없지만 내가 써온 글은 나의 일부였다. 제일 나를 닮은 결과물이었고 글을 쓸 때 제일 나다웠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이런 모든 의미를 인지하기 전에 이미 글을 쓰고 있었고 글을 쓴다는 게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섬세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진솔하지만 담백한 글이 쓰이길 바라며 계속해서 키보드 앞에 앉았다.
글을 쓰고 나서 숨 가쁨과 슬픔, 공허함이 사라졌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글쓰기는 구원이 아니다. 그저 나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을 뿐이다. 숨이 차거나 슬픔이 찾아오거나 혹은
글을 쓰거나.
나의 시간이 글을 향해 흘러간다. 글을 쓰는 동안 힘들고 쓰지 않는 날은 괴롭다. 그럼에도 글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고 싶다. 멈추지 않고 이야기 하고 싶다. 글을 썼던 사람, 써봤던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고 있는 사람. 앞으로도 쓸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