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삑삑삑삑삑”
머리를 쓰지 않아도 손가락이 기억하는 몇 자리의 번호를 누른 후 적막이 흐르는 집으로 발을 내디딘다. 퇴근하고 돌아온 나를 먼저 마중 나온 건 악취이다. 귀찮고 귀찮고 또 귀찮아서 제때 버리지 않은 음식물이 쉬어버렸다. 음식물이 아니라 정말로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냄새도 냄새지만 저 지경이 되도록 일을 미룬 내가 싫다. 날씨가 더운 여름이면 게으름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나 더위가 아니더라도 여름이 싫다.
동선 줄여보겠다고 좁은 현관에 내놓은 재활용들로 입구부터 발 디딜 틈이 없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가면서 재활용도 버려야겠다. 양말을 벗고 손과 발을 씻고 거실에 불을 켜면 출근하기 전과 그대로인 모습이 보인다. 개어놓지 않은 빨래들과 벗어 던져놓은 옷, 정리하지 않은 화장품, 바닥에 뒹굴고 있는 머리카락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걸 눈앞에 보여주고 있으니 편해야 할 집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바닥에 먼지라도 치우고 싶은데 로봇 청소기를 돌리려면 바닥에 물건이 없어야 한다. 청소하고 싶으면 정리를 해야 한다. 그 정리를 하기 싫은데. 사소한 거 하나 시작하지 못해서 집 안 꼴이 말이 아니다. 미세먼지다 뭐다 해도 아직 멀쩡한 거 보면 이까짓 먼지 먹는다고 안 죽는다.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면서 바닥에 물건들을 요리조리 피해 외출복을 빨래통에 넣는다. 빨래통은 왜 이리 작은지 몇 벌 안 넣어도 뚜껑이 입을 다물지 못한다.
오늘은 꼭 치우려고 먹은 마음은 침대에 몸을 기대자마자 사라진다. 에라 모르겠다. 집을 안 치운 지 얼마나 됐더라? 이런 거지 소굴에서 몸만 씻고 나가도 티 안 나겠지? 마음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집 상태라고 어디서 들었는데 지금 나는 어떻지? 최근에 크게 스트레스받는 일은 딱히 없었는데. 평소에는 짐작 가는 부분이 있어서 골몰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모르겠다. 얼마나 심연에 있는 문제이길래 감도 안 잡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음에 걸리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오랜만에 밥 먹자는 친구의 약속을 거절했으며, 생각보다 카드값이 많이 나오고 있고 또 글을 안 쓰고 있다. 사실 이 모든 게 원인이 아니라 결과 같다. 무기력해서 생기는 일. 이번에는 얼마 동안 이러고 있으려나. 심각한 일들을 해결했는데도 아직도 무기력증이 찾아오는 게 과거랑 달라진 게 없다.
기계적으로 무한 새로고침을 하며 의미도 목적도 없는 유튜브 세상 속에서 헤엄을 치다가 새벽 2시에 자기를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을 하다 보니 드디어 이 짓도 질렸는지 이불에 파묻혀 있다가 갑자기 이렇게 살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서 밀린 빨래를 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집에 쌓아 놓았던 온갖 쓰레기 더미들을 차례대로 버린다. 집 안을 정리하니 머리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하지만 물걸레질해도 아직도 끈적거리기만 하고 물 자국이 남은 바닥처럼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집 정리는 완전하지 않고 아직도 무엇이 나를 무기력하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해야지. 다시 하던 대로 글을 쓰고 운동을 가고 규칙적으로 생활해 보려고 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구렁에 빠지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서서히 구렁에서 빠져나오기도 하니 쌤쌤이다. 지금은 그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