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미래, 의미와 흥미 사이에서
“무슨 일 하세요?”
누군가 직업을 물어온다. 아래턱을 살짝 움직여 만들어진 공간에서 혀를 아랫니 위에 둔다. 그 위에 윗니를 포개려다가 이내 입술을 오므린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좁아진 입술 사이로 숨을 들이마시고는 날숨에 새는 듯한 발음으로 대답한다.
“ㅎ...... 회사원이요.”
회사원. 그래.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니깐 회사원이긴 하지. 단 세 글자 만에 나란 존재는 흐려진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내 마음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유한다. 서류상으로도 소속이 있는 사회인인데 왜 취업을 준비하던 4년 전과 같은 심정인지 알 수 없다. 무엇이 내 밥벌이를 이렇게나 부정하고 끊임없이 못 견디게 만드는 걸까.
학위를 따고 1년 동안 구직 활동을 할 때 딱히 그려놓은 미래는 없었다. 학생도 연구원도 아닌 변변치 않은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회사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상황에 떠밀려 회사에 취직한다면 더 이상 가능성은 온데간데없고 다른 길은 막히겠지. 입사하는 순간부터 생기는 중력과 관성에 의해서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내고 마는 그런 일상이 눈에 보였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인제 와서 자아 탐구를 하자니 도피로 보였다. 하루빨리 사회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겨났다. 초조하지만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유일하게 합격한 이 회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가끔가다가 간판이나 상품에 Since 2013 이런 식으로 고작 50년도 안 된 역사를 들이미는 건 좀 우스웠다. 정통성이 있다기보다는 시대에 뒤처져있는 것처럼 보였고, 십 년도 안 된 역사를 들이미는 건 어쭙잖게 겉멋만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입사 1년 만에 회사에 다니기 싫어졌다. 일 년을 한 달을 매일매일을 지내는 게 아니라 꾸역꾸역 그저 버티면서 다녔다. 그러다 보니 몇십 년 장인이 아니더라도 5년 차 직장인들이 대단해 보였다.
적응해보려고 해봐도 도통 재미란 있지 않았고 이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도 존재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무엇 하나 찾지 못한 상태에 고여서 이대로 도태될까 봐 걱정되었다. 익숙함과 안정감, 그 속에서 소소한 흥미와 성취감이 있는 그런 안온한 직업적 환경.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싫어하지 않았으면 했다. 사랑하지는 않아도 좋아하게. 그곳에 있는 그 직업으로 살아가는 내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 하세요?”
“____________”
네?
“__________________________”
공백 없이 입 안 가득 찬 단어를 마음 속으로만 굴리지 않기를. 입 밖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퍼져나간 단어가 문장과 문장 사이의 빈칸을 채울 수 있기를.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