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해아 Feb 04. 2023

젊은 알바생과 언젠가 성공할지도 모르는 직장인

아르바이트 회고록



끼니를 때우기 위해 들어간 음식점은 어수선했다. 옆 테이블 반찬을 집어 먹을 수 있을 만큼 간격이 가까운 테이블들에는 손님들이 앉아있었고 손님이 떠나간 자리는 식기들이 테이블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었다. 바쁜 점심시간의 홀에는 알바생 한 명뿐이라 신속함은 저 멀리 가버린 상태였다. 알바생이 계산대에 올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언젠가 오겠지. 이미 메뉴는 골랐지만, 메뉴판을 꼼꼼히 보면서 시간을 죽였다. 저런 메뉴가 있었네. 맛있겠다. 홀에 있던 빈 그릇을 보내면 주방에서는 화답하듯이 갓 만들어진 음식을 건넸다. 한 발짝보다 작은 계산대와 주방 사이에서 몇 번의 방향 전환과 갈피를 잃은 손동작을 하던 그와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그는 시선을 고정할 여유도 없다는 듯이 힐끗 보고는 입을 뗐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몸은 하나인데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몰려오니 과부하에 걸린 로봇처럼 눈동자가 공허했다. 포스기를 사용할 줄 아는데 그냥 내가 결제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헛된 상상은 그만두었다. 주문이 밀리고 대기하는 손님은 늘어나고 앉을 자리가 엉망이어도 사람들은 기다렸다. 복잡한 공간 속에서도 저마다의 속도와 방법으로 식사 시간을 채웠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있지 못하는 건 알바생뿐이었다.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생각에 빠져버렸다.  




-
 



대학생이 되었어도 부모님께서는 용돈을 준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돈이 필요할 때마다 쭈뼛거리는 모습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제일 먼저 깨닫게 된 건 나는 (어떤 종류이건) 일을 못 한다는 사실이었다. 주문한 메뉴와 다른 메뉴를 만들거나 단순 작업인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공부를 못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일련의 경험들 때문에 진로는 혼자서 골똘히 시간을 보내는 연구직으로 선택하려고 했다. 사람을 상대하고 몸을 부단히 움직여야 하는 일은 절대 직업으로는 삼지 말아야지 하면서. 놀라운 일은 손님들은 실수에 관대했다. 화를 내리라 예상했지만, 세상에는 너그러운 사람들이 많았다. 혼자서 불안에 떨던 일이 무색해질 만큼.


 

아르바이트더라도 어리숙하지 않게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고나거나 경력이 쌓여야 하는데 두 방법 다 만만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떠올린 선택지는 손님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친절이 일의 효율성이나 전문성을 높여주지는 않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지속성이 있는 친절은 무리지만 일회성의 친절을 건네는 건 자신이 있었다. 인사와 응대에 호의와 배려를 담아서 행동하고 음식을 만들 때는 진심을 다하려고 했다. 너무 세세해서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알 수 있는 디테일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도 빈틈은 여전했다. 서빙하다가 손님 옷에 음식을 흘리거나 주문 순서를 깜빡하거나 잘못의 연속이었다. 실수에 의기소침해져 있었지만 친절함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물잔이나 접시가 비었는지 식기류가 떨어졌는지 손님에게 필요한 걸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상태를 파악해주면 손님이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좋아했던 타이쿤 게임처럼 손님 머리 위에 뜬 요구 사항을 완수하는 느낌으로 아르바이트 시간을 보냈다.


 

식당은 학교 안에 있었기 때문에 손님들은 교수님이나 학생, 학교 방문객들이었다. 주 2회만 아르바이트했지만, 눈에 익은 손님들이 생겼고 다시 만나게 되면 알게 모르게 친근감을 느꼈다. 자주 방문했던 교수님들이 점심시간에 방문했을 때였다. 룸 형태로 된 단체석으로 그분들을 안내하고 평소와 같이 몸을 움직였다. 주문받고 물잔을 채우고 음식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고. 다리가 저리지 않게 발장난을 치다가 문이 활짝 열린 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모든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략 오전 회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지금이야 직장인이라면 관성처럼 또 관례처럼 밥 먹으면서 일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학생이었던 그때는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식사 시간까지 저러나 싶었다. 문이 열렸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과의 비밀이나 시험 문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면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 혹시 문을 닫아드릴까요. 어디선가 본 고급 식당의 웨이터를 떠올리며 친절하면서도 진지하게 목소리를 냈다. 일순간 조용해지자 문 가까이에 있던 손님이 미소를 띠며 괜찮다고 말했다. 왠지 모르게 머쓱해져서 필요한 게 있으면 불러달라고 말하고는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친 교수님들이 계산대 앞으로 걸어왔다. 아까 괜찮다고 말한 손님이 결제를 기다리면서 말을 걸어왔다. 여기 학생이에요? 네. 알바는 얼마나 자주 해요? 얼굴은 자주 봐왔지만, 사적인 대화는 처음이었다. 나에 관해서 물으면서 자신에 관해서도 알려주던 손님은 아까와 같은 미소로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학생은 뭘 해도 성공하겠네요.”  



갑작스러운 격려에 얼이 나간 상태로 손님의 뒷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봤다.  




-


 

돌솥비빔밥을 한 숟가락 떠서 그때 손님이 했던 말을 밥과 함께 씹어본다. 교수님은 순 거짓말쟁이네요. 뭘 해도 성공할 거라니. 실패한 건 아니지만 성공과는 거리가 먼 상태인데. 성공이란 뭔데요? 한입 가득 넣은 밥을 우적거리면서 빈정거린다. 손님이 말한 성공에 그 어디쯤 왔는지 항상 궁금하다. 지금의 나는 많이 변해서 그런 걸까. 그 때와는 다른 시급을 받는 알바생이 눈앞을 지나간다. 이제는 테이블에 앉아 카운터 안 알바생에게서 지난날의 나를 떠올려본다. 그는 어떤 사연으로 주말을 반납하고 여기 있으며 이 시간의 끝에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일렁이는 마음을 붙잡고 그저 그의 오늘이 고단하지를 않기를 바라면서 음식점을 나섰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로 위와 종이 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