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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Dec 05. 2022

도로 위와 종이 위

방황의 시간과 글을 쓰는 이유



침대에서 일어나 옷가지를 챙기는 소리,

방문이 찰칵하고 닫히는 소리,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고 화장도구들이 얼굴에 스치는 소리,

다시 문이 찰칵-하고 닫히는 소리.

고요하지만 분주한 움직임을 담은 일련의 소리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은 진작에 깼지만 자는 척을 했다. 발소리가 완전히 방에서 멀어진 후에 핸드폰 화면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 하루를 예상해보자면 이 상태 그대로 침대에 머물다가 룸메이트가 퇴근하면 멋쩍게 인사하겠지. 이유가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졌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벌써 실험실에 출근 안 한 지 5일째가 되었다. 이렇게 포항에서 썩어버리게 될까?




아직 취직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실력이 있든 학구열이 있든 하다못해 성실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어느 것도 없는 상태로 덜컥 실험실에 입학했다. 사실 동력원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인생에 목표가 없었다. 수십 년을 되는대로 살아왔지만, 이 방식이 통하는 건 대학생 때까지였다. 꿈이라고 불릴 거창한 게 아니어도 적어도 목표는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향성 같은 것 말이다. 브레이크를 걸듯이 갑자기 찾아온 인생에 대한 질문에 넘어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날 수가 없어 무기력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자아 탐구는커녕 먹고 자고 씻는 기본적인 생활도 해내지 못했다. 끈적끈적한 물체가 온몸을 덮은 듯 꼼짝할 수 없어 침대 주변만 맴돌았다. 틀어진 일상을 되돌리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영양소 부족, 운동 부족, 스트레스 과다로 인해서 몸이 아우성치었다. 무기력해도 무감각한 건 아니어서 아픈 건 아팠다. 급한 일은 없었기에 병원에 갈 때 버스를 탔다. 교통편이 좋지 않은 포항에서 버스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수단은 아니었다. 배차 간격은 이십 분을 훌쩍 넘고 지도 위에 새겨지는 버스 노선은 전화선처럼 구불구불했다. 특히 자주 타는 노선은 중간에 회차지가 껴있어서 오랜 시간을 정차하였고 거기다가 순환선 구간도 있어서 몇 정거장 뒤에도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정류장에서 타야 제일 효율적일지를 찾다가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에 제일 가까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에 올라탄 후에는 자리에 앉아 옆을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잃어버렸던 시간 감각을 일깨웠다. 노후한 버스에서 맡을 수 있는 멀미 나는 냄새, 버스 시간표를 맞추려 미친 듯이 달리는 버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승차감. 침대보다 열악한 상태였지만 긴장감은 덜 했다. 40분이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버스를 오래 타고 싶은 마음에 다음에는 더 멀리 가보고 싶었다.




버스 여행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반나절은 계획이 생겼다. 내 인생 자체는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이렇다 할 목표가 없었는데 버스를 탄 순간만큼은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일시적인 목표가 생겨서 쓸모없다는 느낌이 옅어졌다. 게다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일은 버스비를 내고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노력하는 건 버스와 기사님의 몫이었다. 애쓰지 않아도 목표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불안감을 덜어주었다. 목적지까지 남은 정거장 수를 헤아리다가 노선도에 눈이 갔다. 그러다가 이내 차고지에서 나올 때부터 가야 할 경로와 목적지를 아는 버스가 부러웠다. 최단 거리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돌고 돌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도 탐났다. 내게는 없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버스에 은연중에 끌렸었던 모양이다. 버스를 타면서 노선도가 내 인생에도 그려지기를 바랐다. 버스 기사님처럼 주저 없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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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무기력의 밤을 벗어나 이제 회사원이 되었다. 포항의 생활과 완전히 달라진 지금 버스 여행은 더는 예전만큼의 의미가 있지 않다. 깊은 구렁텅이를 벗어났어도 아직도 목표를 찾지 못했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나에게는 방황의 시간이 필요했다. 글을 언제 어떻게 쓰는지보다 중요한 건 어떨 때 글을 쓰고 싶은가 하는 혹자의 말에 내가 버스 여행 대신에 글쓰기를 택했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갈증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답을 모르겠는 모든 날에 노트북을 켜서 키보드를 두드렸고 손끝에서 찌그린 글자 속에서 해갈할 물 한 모금을 찾고 있었다. 써 내려간 글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미약한 성취감과 더불어 내 인생은 종이 밖 세계에서 존재하는데 종이 안 활자가 무엇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들기도 한다.




도로 위에서 이뤄졌던 방황과 고민의 시간이 단지 종이 위로 장소를 바뀌었을 뿐이다. 그저 지금은 종이 위에 노선도를 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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