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리스 리코일

한없이 가볍고 얇은 전투 미소녀 전시

by Writingonthewall

리코리스 리코일, 약칭 리코리코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모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본작은 총 쏘는 인간 병기 여고생, 미소녀라는 단 하나의 핵심적인 컨셉으로 부터 시작해서,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집요하게 관철해 나간다. 이는 전형적으로 모에 이미지를 소비하는 현대적 오타쿠들을 겨냥한 기획으로서 그 덕분에 리코리코는 다수의 소비자들에 의해 이번 분기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꼽힐 수 있었지만, 바로 그러한 점에 의해서 전형적인 오타쿠 애니메이션으로서의 한계를 지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중의 배경인 일본은 DA라는 비밀 기관의 철저한 정보 통제와 독자적인 치안 활동을 통해, 수많은 테러리스트, 범죄 조직의 암약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인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사회로 묘사된다. 본작의 두 주인공, 치사토와 타키나는 '리코리스'라 일컬어지는 DA의 요원으로서, 각지에서 테러를 기도하는 범죄자들을 사전에 무력으로 제압하며 비밀리에 일본의 치안을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본작은 서로 대조적인 스타일을 가진 이 두 주인공이 함께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료 이상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이 리코리스라는 이름의 전투원들은 모두 교복을 착용한 청소년기 소녀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작중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가장 타겟에게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있는 형태의 위장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설명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런 이유가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은 국가로 부터 일종의 살인 면허를 교부받고 빈번하게 실탄 사격을 통한 교전을 벌이는 전투원이다. 교복 차림이 그런 용도로 부적합한 복장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총탄과 폭발물이 난무하는 교전 현장에서 전투원의 교복 차림은 오히려 위화감을 자아내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활동 일체가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그래서는 안될 기밀 사항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사실 평범한 일반인의 모습으로서 사회의 배경과도 같이 스며드는 그러한 형태의 위장이 목적이라면 그게 꼭 교복 차림이어야만 할 이유도 없다. 가령, 정장 차림의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가장할 수도 있지 않은가. 따라서 실제로는 그래야만 미소녀 이미지를 좇는 오타쿠들에게 어필이 되고 상업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메타픽션적 의도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본작은 (전투에 능한) 교복 미소녀의 이상화된 이미지를 집요하게 관철하며, 그러한 목표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부지불식간에 배제한다.


본작의 두 주인공 치사토와 타키나는 단독으로 총기로 무장한 십수명의 성인을 대적하는 게 가능한 전투의 프로이자 살육 기계이면서도, 그 밖에 모든 측면에 있어서는 오타쿠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에화'된 (싸우는) 교복 미소녀의 전형에 충실하다. 둘은 비밀 치안 기관의 요원으로서 일상적으로 겪는 교전 상황과 곳곳에서 암약하는 테러리즘,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그러한 사태에 관한 어떠한 정서적 동요도 느끼지 않는다. 반복되는 전투에 대한 스트레스 반응, 자신들이 의무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세계의 어두운 진상, 어린 나이에 전투원으로 활동하면서 사람을 죽이거나 죽임 당해야만 하는 일체의 한계 상황에 관한 윤리적 딜레마, 그러한 한계 상황에 대해 자연스러운 생리적, 정서적 반응으로서, 억누를 수 없는 충동으로서 나타나는 고뇌, 신경증에 관한 묘사는 작중에서 그 가능성 자체가 상정되지 않은채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숙련된 특수 기관 요원으로서, 그 직업적 특성에 기인하거나 그에 적합한 것으로서 적응적으로 발달하는 성격적 특질trait을 지니지도 않는다. 가령, 인명에 대한 독특한 관점, 조직이 내세우는 대의에 의심없는 신의를 표하는 전체주의적 태도, 외부의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 고도로 발달한 경계 심리,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냉정함 따위의, 초법적, 탈법적 기관의 요원이라면 일종의 직업적 소양으로서 가지고 있으리라 개연적으로 추측되는 특질이 이들에게서는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


요컨대 작중에서 묘사되는 현실의 양상에 비해,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불가피한 영향 아래 놓여 있을 것으로 가정되는 인물의 머릿속이 지나치게 '꽃밭'이다. 전투에 있어서 고도로 숙련되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들은 전형적인 '소녀스러움'을 간직한 청소년기의 여성에 지나지 않는다. 둘은 극히 위태로운 일상의 토대 위에서도 아무런 지장없이 일상적인 유희를 즐기며, 그들이 영위하는 양면의 삶, 즉, 리코리스의 삶과 그 나이대의 여자 아이로서의 삶은 공통의 분모없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 전자가 자기의 생명을 걸고 공공의 안녕을 위해 초법적인 결단으로서 투쟁을 벌이는 것에 비해, 후자에게는 전혀 그러한 의식이 없다. 그래서 총기 거래범들을 반드시 생포해야만 한다는 상부의 명령에 불복하고 인질로 붙잡힌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몰살을 자행한 타키나의 결단은 보는 입장에서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타키나는 명령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좌천'을 당했고, 그 결과로 치사토와 같은 팀에 배정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일련의 사태는 절대적으로 정당화되는 최상위의 목적을 위해 수단의 정당성을 기꺼이 희생하는 초법적 기관의 대의와 그 반대편에 있는, 목적을 수단에, 추상적인 대의를 각개의 인명에 앞세울 수 없다는 규칙 간의 대립을 상정한다. 그러나 이 의도된 대립 구도는 시작하자마자 후자의 절대적인 우위가 인정되어 기능하지 못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조직원이면서도 실질적으로 조직과 공공의 논리에 구속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리고 명령에 전제된 공공의 대의에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싸울 뿐이다.


다수 민간인들을 상대로 접객하는 카페에서 이 두 주인공이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그렇게 공개된 형태의 업장이 이들의 활동 거점으로 기능하는 설정은 본작이 지향하는 모순과 부조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즉, 수많은 적대자를 두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작중 리코리스들은 DA의 중앙 시스템이 해킹되고 외부에 리코리스의 신원 정보가 유출되어, 적대 세력의 표적이 된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리코리스들이 단독 행동 중 습격을 받아 살해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리코리스로서의 업무와 일상의 사이를 가르는 경계와 업무로 부터 유리된 일상의 평화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특히, 치사토는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단독으로 야간 활동을 하는 등, 그러한 사실에 대해 조금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불특정 타인에 대한 신의의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외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둘은 손님들과 보드 게임을 하고 업무 외적인 심부름을 받아 다녀오기도 하며, 고객들과의 상당한 친밀 관계를 구축하기도 한다. 이 가상 내부의 현실에 대한 분열적인 태도, 부조화는 일체의 사태의 심각성을 희석하기 위해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리코리스 리코일>은 일상을 파괴하는, 그럴 우려가 있는 어떤 사태에 관련한 이야기이면서도, 결정적인 측면에서 그 사태로 부터 거리를 둔다. 그리하여 일상성은 어떤 위협에 의해서도 결국 훼손되지 않고 천진한 소녀의 이미지, '보여주기에 최적화된' 여성성을 보존하는 성역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예외만으로도 흔들릴 수 있는 취약한 전제로서 쉽게 훼손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의해 일상적 평화에 내재되는 긴장이 묘사되는 대신, 디저트를 탐닉하고 수족관 관람을 즐기며 료칸 종업원 풍의 유니폼을 입고 근심없는 미소와 함께 고객과 유희하는, 모에화한 미소녀의 부유하는 이미지만이 주어진다. 타키나의 '속옷'과 관련해서 한 화의 분량이 통째로 할애된 에피소드는 그러한 작품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치사토는 타키나가 치마 밑에 남성용 속옷을 받쳐 입은 것을 발견하고는 휴일에 그녀를 상점가로 불러, 여성용 속옷을 사준다. 그리고는 타키나가 가진 남성용 속옷을 모두 폐기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에게 보여줄만한' 것, 전형적인 여성성을 표상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상상되는' 여고생의 미적 지향에 관한 노골적인 오타쿠적 환상, 페티시즘을 반영하는 에피소드는 그러한 상상된 전형에 기반한 미학적 이미지가 서사의 기능적 수행, 진전에 선행하는 도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즉, 타키나가 자신이 편리하다고 느끼는 남성용 속옷이 아닌, 여성용 속옷을 입어야만 한다고 믿어진다는 것, 그렇게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모든 일면에 있어서도 여성적 매력을 함양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가공된 여성미를 전시하는데에 주력하는 작품의 총체적 지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작중에서 진정으로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의 사태는 단지 교복 차림의 전투 미소녀의 이미지를 전시하기 위한 계기로서 조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각자의 생명을 건 투쟁이 아니라면, 적어도 자명한 위험이 전제된 곡예여야 할 전투 상황에는 어떤 위기도 없다. 사실 그것은 '전투'조차도 아니다. 의도된 것은 승리, 역경을 극복함으로서 얻어지는 기정된 결과가 아닌, 미학적으로 계산되고 다듬어진 일련의 동작 구성과 구도의 연출에 의한 매끄러운 이미지의 전개, 그 과정 자체이다. 적들은 실제적인 위협으로서가 아닌, 일종의 표적으로서 제시된다. 그것들은 실질적인 난점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일련의 과시적인 사태의 양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위험을 현시해 보이면서, 싸움의 이전에 각개의 요소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과정의 양상을 미리부터 암시한다. 실제로 전투가 시작되면, 가능한 구성에 따라 예정된 스펙터클의 과정, 연출이 실현될 뿐이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타키나는 중기관총을 난사하여 범인들을 몰살하고 그 가운데에 인질로 붙잡힌 동료를 구한다. 하지만 좁은 공간 안에 함께 밀집하고 있는 적과 아군을 겨냥하는 행동에 수반하게 되는, '무고한 희생'의 가능성을 암시함으로서 시퀀스 안에 의도되는 긴장은 실제로는 유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위험을 개연적으로 예견하게 하는, 불균질한 탄착군을 형성하는 자동 화기의 특성과 적들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 아군의 생명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사실은 그 순간에 있어서, '메타픽션'적으로 제어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종료된 직후, 타키나는 현장에 있던 다른 리코리스에게서 동료를 죽일 셈이었느냐는 질책을 듣는다. 물론 이는 타키나의 행동에서 개연적으로 예증되는 부수적 피해가 유발될 위험에 관련해 있다. 하지만 타키나는 그 의도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다. 그러한 난점이 인지되지 못할 정도로 그것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치사토는 총기의 사선과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읽고 머리 움직임만으로 총탄을 피하는, 사실상의 초인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홀로 총격의 공포, 위험으로 부터 해방되어 있고, 그래서 총격전은 치사토에게 차라리 하나의 유희에 가깝다. 그녀는 철저한 불살주의자이기도 한데, 이는 어떤 윤리적 판단의 귀결이라기 보다, 그녀에게 애초에 전쟁이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창작물에서의 불살주의는 죽거나 죽여야만 하는 작중의 냉혹한 현실과 불화하는 인물 개인의 독특한 개성을 부각시키거나, 생명을 빼앗는 행위 자체에 대한 윤리적 난점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활용된다. 도덕적인 판단, 행위의 숭고함은 그것이 수반하는 어떤 리스크,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순수한 당위에 대한 의식에 바탕을 두고 실천된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서로의 모든 것을 건 투쟁에 임하면서도 스스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제약하는 입장이 가지는 특수성 또한 그와 같다. 즉, 불살주의라는 입장 자체보다 그러한 결의를 가능하게 하는 모종의 계기에 모티브적 핵심이 위치하는 것이다.


픽션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시되는 두 불살주의자 캐릭터, 브루스 웨인과 클라크 켄트는 폭력을 비롯한 여러 초법적인 수단을 활용하여 빌런들과 대적하면서도, 결코 살인만은 저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살인은 기본적으로 악인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고, 따라서 그 자신을 그들과 다를바 없이 만드는 결정적인 도덕적 타락의 표지로 간주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제약에도 얽매이지 않고 악행을 자행하는 악인들에 맞서서, 도리어 스스로 대응의 수위를 제한하는, 그러한 행위의 원칙을 고수하는 데에는 물론 그만한 위험이 잇따른다. 실제로 둘은 살인을 기피하는 원칙에 지나치게 천착한 나머지, 종종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증오해마지 않는 악인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념에 대한 숱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수하며 꺾이지 않는 의지로서 관철한 끝에, 둘은 코믹스의 범주를 벗어나 대중 문화 전반의 영역에서 아이코닉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치사토의 경우, 그녀의 불살주의는 단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스스로에게 아무런 난점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내려질 수 있는 결정에 불과하다. 그녀의 원칙에는 어떤 고찰이나 결정적인 경험을 통해 얻어진 윤리나 신념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다. 단지, "타인의 시간을 빼앗는" 일에 대한 거부감, 스스로도 명확히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정서만이 전제되어 있다. 그녀는 전신을 드러내놓고 자동화기에 대적하면서도 총에 맞지 않을 수 있는 초인적인 재능을 가졌고, 때문에 적들은 근본적으로 그녀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 애초에 대등한 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러한 원칙이 유도하는 자발적인 행위의 제약도 아무런 실질적인 난점을 초래하지 않는다. 치사토는 전투에 있어서 스스로를 구속하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적들을 매번 간단히 압도한다. 따라서 어떤 예상되는 위험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관철되는 숭고한 행위의 원칙일 수도 있었던 것은 단순한 동정심에서 우러나오는 자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한편 이들의 세계에서 만연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대규모의 테러리즘은 그에 대립하는 인물의 속성을 그 구도 안에서 드러내기 위한 기능적 매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테러리스트들에게는 얼굴이 없고 맹목적인 파괴를 지향하는 이외의 특유한 신념도 없다. 작중 테러리스트들은 자기의 인격과 목표 의식을 가진 구체적인 인격체라기 보다, 일체의 적대를 정당화하는 모호한 악의 개념 자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렇게 설정된 자명한 악은 자체의 정의에 의해서, 문제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머지않아 스펙터클의 과정으로 현시되는 처분의 대상이 된다. 악은 오로지 징벌 당하기 위해 태어나고, 그 위압적인 외피와 대립 구도의 관계항으로서의 순수한 역할 규정만을 가진다. 즉, 그것은 실제를 체현하는 것이 아닌, 보여지는 것으로서의 악이다. 그러한 관계 규정은 필연적인 충돌을 예증하고 실제로 현시해 보이기도 하면서, 의도된 과정의 총체를 구성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오로지 모티브로서 유효하고 필요에 의해서만 문제적이다. 물론 그러지 않아야만 할 이유는 없다. 시각적 유희는 그저 유희인 것만으로도 족한 것이다.


이처럼 적대 세력을 익명화, 장치화, 그리고 탈-정치화하는 기술은 그 자체의 함의와 그것의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윤곽을 가지는 양상이 관련하거나 의도치 않게 표상하게 되는 현실의 일면에 대한 추상 작용의 기능을 축소시킴으로서, 작중의 사태를 오로지 그 내부에 한정된 단순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그 의도가 있다. 즉, 아무 생각없이 '뇌를 비우고' 관람할 수 있는 즐거운 이야기이기 위해서, 순수한 흥분과 유희를 전달하는 매체로 남기 위해서, 그것은 납작하고 그 기능적 표지 이외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순수 악의 심볼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탑건 시리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비롯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볼때, 그 안에서 등장하는 적대 세력들이 무국적화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얼굴이 없으며, 나름의 주관적 정당성, 내지는 불가피하고 위급한, 그리하여 일정한 참작의 여지를 가지는 사태, 입장에 바탕을 둔 동기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지 않으며, 사실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적'은 자신의 보편적인 '적대성' 자체만을 지닌채, 근본적인 이해의 가능성을 박탈 당하여 화해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할 수 없는 대립이 조성된다. 적은 적이라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매 순간의 극적인 국면에 있어서 히어로에게 격퇴 당하기 위해, 그의 활약을 가능하게 하고 일련의 취해지는 조치들의 정당성을 성립시키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keyword
이전 16화자기불구화적 방어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