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시리즈가 지속되고 관객들이 기대하는 자극의 역치가 높아짐에 따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그간 주인공 이단 헌트가 해결해야 할 사태의 규모와 심각성을 부단히도 키워왔으며, 시리즈의 최종장인 본작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세계와 인류의 운명을 건 위기에까지 사태의 스케일을 키우고 말았다. 레코닝 사가의 주적 엔티티는 최근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위기감을 반영하듯,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엔티티의 목적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인공지능 악역의 어떤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인터넷과 각국의 정부 기관 네트워크를 잠식하여 정보, 여론 조작을 통해 사실과 거짓의 구분을 뒤흔들고 (인공지능 악역의 대선배 격인 스카이넷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핵 보유국들의 핵 무기 발사 통제 시스템을 장악, 인류 문명을 파멸로 몰아넣을 것이 자명한 세계 규모의 핵 전쟁을 일으켜 자신 중심의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자 한다. 물론 이단 헌트는 이 초유의 인공지능 악역을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입장이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의 승리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정해져 있다. (패배할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담대한 구상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분명히 전에 다루어 본 적 없던 주제와 스케일을 다루는 데에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엔티티를 물리적 실체도, 국적도 가지지 않은, 인간의 한정된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지능적 존재로서 지금까지의 인간 악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나 실제로 관객이 보는 엔티티는 이미 지금까지 보아왔던 보통의 인간 악역들의 악의와 힘에의 의지의 추상적인 표현형에 불과하다.
그것은 단지 모든 것을 파괴하고 파탄의 상태로 몰아넣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며, 그러한 의도에 초지능 개체다운 합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사이버 스페이스 인프라에 의존 하여서만 생존할 수 있는 가상 개체가 -아마도 그것을 유지, 보수할 수 있을 유일한 존재일- 인간을 절멸 시키고자 하는 일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지금까지 시리즈에서 등장한 인간 악당들과 다름없이 맹목적으로 악할 따름이다.
그의 '초지능'적으로 보이는 신묘한 예측 또한 그저 잘 설계된 수준의 계획과 구분되지 않는다. 실제로 엔티티는 이단 헌트에 대해서 단 한번도 진정한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결국 이단 헌트는 엔티티의 예상을 초월하여 상식적이지 않은 위험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한다. 그 과정에서 오직 인간만이 '계산 기계'의 합리적인 예측을 초월하여 진정한 자유 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는 '인간 찬가'의 조잡함도 함께 포착된다. 사실 정말 엔티티가 인류 지성의 총합을 아득이 초월하는 진정한 초지능 개체였다면, 영화에서처럼 미리부터 자신의 계획을 누구나 알 수 있게 드러내며 인간들이 대응할 여유를 주는 어리석은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필요한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자신의 계획에 더하는 건 확실히 초지능이 할 법한 일은 아니다.
엔티티와 같은 초지능 개체가 (흔히 딥페이크와 같은 기술에 대해 우려하듯) 우리가 사실 판단을 할때 참조할 수 있는 각종의 정보와 데이터를 조작하여 우리가 아는 사실과 거짓 사이의 구분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우려에 관한 주제 의식 또한 피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영화는 그러한 엔티티의 권능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일 없이, 그저 엔티티가 그런 방식으로 국제 여론을 조작하고 자신을 구세주로 삼는 컬트의 리더가 되었다는 설명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에서 쓰인 표현을 빌리자면) '엔티티의 현실' 엔티티가 모든 정치적 현실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은 이미 영화의 시작부터 미리 주어진 것으로 전제될 뿐이다.
활동 사진과 음성의 결합을 통해 성립한 매체로서, 영화의 미덕은 설명하기 보다는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에 있다. 철저히 '텍스트'로 환원 가능한 내용이라면, 그냥 대본을 읽지 영화를 볼 필요도, 이유도 없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 우리는 영화를 보고, 탐닉한다. 그러나 파이널 레코닝은 정반대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아마도 영화의 감독과 제작자, 크리스토퍼 맥쿼리와 톰 크루즈는 영화가 다루는 사태의 규모와 심각성, 전에 없던 영역에서의 위협은 '영화화'되기에 너무나도 심대하고 관객의 직관이 다룰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파이널 레코닝은 이번 임무에 얼마나 많은 것이 걸려있고, 얼마나 복잡한 사실 관계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며,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얼마나 많고 곤란한 기술적인 난점들이 산재하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데에 그친다. 그리하여 파이널 레코닝은 순수한 영화적 쾌감의 순간으로 남을 수 있었을 내용의 상당 분량을 추상적인 개념망에 불과한 것으로 남겨놓는다.
해저와 공중, 양 극단의 영역에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치러진 액션 시퀀스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 각각의 시퀀스에서 주인공 이단 헌트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긴장감을 자아내는 급박한 상황의 변화에 대해서가 아닌, 그 공간의 근본적인 특성, 즉, 대량의 물에 의한 수압과 빠르게 흐르는 공기의 저항에 대해 분투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공간 속을 목표를 향해 느릿하게 헤쳐 나가기에 바쁘다. 그 과정에서 헌트는 아무런 실질적인 위기를 겪지 않는다. 해저의 폐잠수함을 탐사하면서도, 비행기에 매달려서도 헌트는 죽음의 위기를 맞지 않는다. 거대한 해류 속에서도 끝내 스스로에 대한 통제를 잃지 않고 비행기에 수십분간 매달려 있으면서도 끝까지 초인적인 악력을 유지한다. 단지 그의 움직임이 매 순간 물리적인, 너무나도 자명한 저항에 부딫히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모든 기술적인 어려움을 현저한 행운에 가까운, 지극히 낮은 확률의 중첩으로만 묘사한다. 모든 요소가 적시에, 적절한 장소에 준비되고 '100밀리초' 단위의 정확한 타이밍에 실행되어야만 임무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은 단지 그렇게 설명되어, 추상적으로 전제된 것에 그친다. 실제로는 누구도 그러한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관련하는 인물들 모두가 일정한 상황적 저항을 겪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모든 과정들이 일말의 의심이나 결함없이 수행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실시간적 소통없이 수행되는 그 모든 행위들이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극이 진행될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일말의 오차없이 중첩된다. 헌트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무런 장비도, 아군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이 극지방의 바다 속에 뛰어들어도 거기에는 '당연히' 아군의 잠수함이 있고, (엔티티의 원본 소스코드가 담긴) 포드코바와 (엔티티의 인지 체계를 무력화 및 재조정 할 수 있는) 포이즌필이 결합되어 엔티티가 그 자신이 지정해놓은 안전 지대의 서버에 송신되는 그 찰나의 순간, 그레이스는 일류 소매치기의 손재주로 불과 100 밀리초 사이의 적시를 포착하여 엔티티를 포획하는 데에 성공한다. 모든 위기와 어려움은 꾸며진 것에 불과하고, 이야기는 예정된 경로를 따라 알 만한 결말로 나아간다. "Nothing is written."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주제 의식이 러닝 타임 내내 반복적으로 상기되지만, 실제로 영화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모든 것은 이단 헌트의 승리를 향해 예정되어 있다. 위기가 없으니, 서스펜스도 없다. 남은 건 이제는 정말로 늙어버린 톰 크루즈의 낡고 무거운 몸짓 뿐이다.
한 마디로 톰 크루즈는 감을 잃었다. 이번 작품이 최후의 <미션 임파서블>이라서 차라리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