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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Mar 03. 2024

요아킴과 안나 3

노부부의 재회

4. Sacrificio di Gioacchino 요아킴의 기도



요아킴은 광야에서 온 정성을 다 바쳐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정성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시간일 뿐만 아니라 가시적인 육체적 노력과 금전적 가치를 지니는 번제물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번제물(燔祭物)이란 ‘완전히 태우다’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가톨릭 전례사전) 중요한 재산인 곡식이나 가축을 제단에 피운 장작불 위에 놓고 불살라 바치는 제사의 형식이 구약에 자주 등장한다.  


이 그림은 요아킴의 제사가 중심이지만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양들이 뜯는 풀꽃이었다. 조토 회화의  큰 특징은 인물들의 강인하고 굵은 선인데 광야에서 꽃을 피운 풀들의 여리고 섬세한 표현이 마치 나풀거리는 손수건의 고운 자수와 같아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요아킴의 절박한 심정을 알지 못하는 철없고 순진한 양들은 그저 평화롭게 엎드려 졸거나 때로는 앞발을 들고 서로의 뿔을 들이받으며 겨루기를 한다. 뿔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경건한 장면임에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본래의 주제로 다시 돌아와서 번제를 바치는 제단을 보면, 얽혀서 쌓여있는 장작이 활활 타면서 불길이 솟구치고 있고 이미 다 타고 뼈가 드러난 제물이 연기가 되어 홀연히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사람의 영혼처럼 그린 것이 인상 깊다. 제물은 제 목숨을 잃은 까닭을 안다는 듯이 희생의 소임을 다하는 것처럼 곧 바수어질 고개를 애써 높이 들고 있다. 이러한 간구를 외면하지 않은 하늘은 손의 형상으로 나타나 이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다.



요아킴의 뒤에서 조용히 함께 기도를 올리는 목동은 오랜 광야 생활에 구릿빛 얼굴을 하고 있고, 이들을 미소로 지켜보고 있는 천사의 얼굴에는 발그레 선홍빛이 감돈다.



제단 앞에 엎디어 기도를 올리고 있는 요아킴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꽉 움켜쥔 두 손이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5. Sogno di Gioacchino 요아킴의 꿈



계속된 기도에 노쇠한 요아킴의 몸은 기력이 다했다. 그는 지친 몸을 누이지도 못하고 어디에 기대지도 못한 오직 제 몸을 의지 삼아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 하늘의 축복을 전해준다. 안나가 곧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천사의 머리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속도감을 나타낸다. 요아킴은 온몸이 망토로 뒤덮여 보이지 않지만 잔뜩 웅크린 그의 자세가 온전히 드러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앞에서 소개한 그림 <3. L'annuncio di Anna 안나의 발표>에서도 볼 수 있는데 가락바퀴를 손에 들고 실을 잣고 있는 젊은 시종의 앉은 자세가 바로 그렇다. 치마로 가려졌지만 무릎의 높이를 다르게 하고 삐딱하게 앉아있는 다리의 윤곽이 선명했었다.



오늘도 양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는데 앞선 장면에서의 들풀은 이미 다 먹고 없어진 터라 새로운 풀들이 등장했다.  


기적이 일어나는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함께 목격하고 있는 목동들의 눈은 아이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지만 거친 광야에서 뼈마디가 굵은 그들의 종아리에는 단단한 근육이 세로줄로 깊게 자리 잡았고 구불구불한 다리털이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삶을 보여준다.





6. Incontro di Gioacchino e Anna 요아킴과 안나의 만남



이 장면을 처음 본 중세의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지금은 별스럽지 않은 입맞춤이지만 당시에 공식적으로 남녀의 애정을 표현한 그림은 조토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그것도 경당을 꾸민 신성한 종교화에서 말이다. 얼굴과 어깨를 감싸고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나누는 입맞춤으로 서로에 대한 진심을 주고받는 이 그림은 하늘의 계시를 받은 요아킴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귀환을 그린 것으로 안나는 성문 밖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이제 곧 생길 것이라는 것을 요아킴도 안나도 알고 있는 상황이라 이들의 재회는 더욱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노부부의 재회를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미소를 띠고 있는데 입맞춤을 하는 주인공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검은 베일의 여성은 일부러 등을 돌려 시선을 피해 주는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인파가 오가는 성문이라 요아킴과 안나가 혹여나 민망할까 봐 보이는 속 깊은 배려였을 것이다.

 


앞사람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고 다른 한 손은 자연스레 요아킴과 안나의 방향을 가리키며 노부부의 기쁜 소식을 도란도란 전하고 있다.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입술 사이로 하얗게 드러난 치아를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눈가와 목주름, 턱밑으로 살짝 처진 살 등 인물들의 특징이 저마다 다르다.


요아킴의 뒤로 바구니를 들고 있는 이의 목에 묶은 끈 매듭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도성을 벗어난 적이 없는 평탄한 삶인지 매끈한 종아리가 목동들과 비교된다.



장면의 배경이 되는 성문은 도성을 지키는 요새로 그림에서는 자연 암반 위에 견고하게 쌓아 올린 형태다. 놓여있는 다리로 보아 성 주위에 해자를 둘러 방어막을 고 문 양쪽으로는 망루를 높이 세웠으며 공격을 위한 작은 사각형 모양의 타구와 세로로 긴 현안도 보인다. 성문은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서 그림을 소개하는 여러 표현 중에 종종 '황금문'으로 부르기도 한다.




* 이 연재는 매주 일요일 발행될 예정입니다.

* 연재 안에 수록되는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HALTADEFINIZIONE 임을 밝힙니다.

* 그림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작품의 배경이 가톨릭이기에 용어 및 인용되는 성경 말씀은 되도록 가톨릭 표기를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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