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함과 마주하는 어리석음은 사리 분별을 못하는 한 남자로 그려졌다. 뒷자락이 긴 예복을 스스로 만들어 입고 머리에는 왕관도 썼다. 권위를 상징하는 왕홀(王笏, scepter )을 들고, 귀한 것들을 주렁주렁 매단 커다란 허리띠를 둘렀지만 남들이 보기에 이 모든 것은 누더기와 잡동사니일 뿐이다. 맨발에 몽둥이를 든 그는 어딘가 조잡하고 꽤나 우스꽝스러워 존엄이나 품위를 찾아보기 어렵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이리저리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며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2. Vizio – Incostanza 변덕
외발자전거 같은 원반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여인은 바로 변덕이다. 쓰러질 듯 위태한 변덕은 굳은 의지와 상반된다.
머리 뒤로 펄럭이는 옷자락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운동성을 배가시키지만 한껏 뒤로 젖혀진 몸에 비해 그녀의 표정은 매우 정적이다. 자신이 왜 넘어지는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멀뚱한 것이다.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부리는 이는 자신의 사풍스러움을 결코 모르는 법이다.
3. Vizio – Ira 분노
여인이 분하고 화가 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을 찢고 있다. 절제와 대비되는 분노는 모든 죄악의 시발점이다. 자칫 욕설, 비하, 폭력과 복수로 쉽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분노의 에너지를 정의 회복의 원동력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4. Vizio – Ingiustizia 불의
불의는 공정과 공평을 말하는 정의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거대하고 견고한 성의 군주가 무시무시한 갈고리가 달린 창과 큰 칼을 쥐고 앉아 있다. 성주의 권력이 얼마나 큰지 쳐든 고개가 거만하기 그지없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창을 쥔 그의 손은 인간이 아니라 기다란 발톱과 털로 뒤덮인 야수의 그것이다. 무소불위의 힘을 악용해 온갖 불의를 저지르는 존재는 금수보다 못하다.
농노(serf, 農奴)로 전락한 평민들이 성주의 발아래에서 가진 모든 것(타고 있던 말과 입은 옷, 그리고 생명까지)을 빼앗기고 있다. 강제로 지워진 부역과 공납이라는 부당한 의무가 처절하다.
* 이 연재는 매주 일요일 발행될 예정입니다.
* 연재 안에 수록되는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HALTADEFINIZIONE 임을 밝힙니다.
* 그림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작품의 배경이 가톨릭이기에 용어 및 인용되는 성경 말씀은 되도록 가톨릭 표기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