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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삶조각사 이지원 Dec 01. 2022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오셨습니다 - 미모1155일차

미라클 모닝의 기록

今子有大樹(금자유대수) 患其無用(환기무용)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하불수지어무하유지향) 廣莫之野(광막지야) 彷徨乎無爲其側(방황호무위기측) 逍遙乎寢臥其下(소요호침와기하) 不夭斤斧(불요근부) 物無害者(물무해자) 無所可用(무소가용) 安所困苦哉(안소곤고재)

- 장자 내편 <소요유> 중에서

"당신은 큰 나무를 갖고 있어도 별다른 쓸모가 없다면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만 드넓은 곳에 심어 두고, 그 곁에서 서성이고, 또 한가로이 쉬다가 나무 아래에 누워 눈 붙일 생각은 왜 하지 않는지요.

그 나무는 누군가의 도끼에 찍힐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지도 않고요. 쓸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도 없습니다."  


요즘 김범준 작가의 오십에 읽는 장자 덕에 아침마다 참 많은 생각을 합니다.

유난히 "오십이 되기까지 우리는 목적을 향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목적지에 다다르자 갈 곳을 잃고 말았습니다."라는 문장이 눈에 밟히고, 마음에 걸려 한동안 다음 줄로 넘어가질 못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실린 곳이 장자 내편의 <소요유(逍遙遊)>입니다. 여기서 '소요'란 뜻은 목적 없이 여유롭게 노니는 만족스러운 상태 또는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뜻한다고 하죠. 그러면서 작가 김범준은 '소요'의 핵심이 바로 '목적 없이'라는 부분에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장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목적이나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는 해석은 참 새롭네요. 지금껏 목적에 갇혀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살아오던 우리에게 필요한 화두 하나를 던져 줍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오셨습니다.

장자 말고 김범준 작가도 우리에게 위로의 말 하나를 건넵니다.

그러고 보니 참 이 말이 듣고 싶었습니다.

어느새 뒤돌아보니 난 움푹 팬 주름살만큼이나 편협해졌고, 늘어난 뱃살에 허풍도 늘었습니다. 걱정스럽죠. 안타까움도 큽니다. 오십이 되었지만 시대가 바뀌어 여전히 우린 책임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합니다. 특히 돈벌이의 고단함은 오십의 어깨를 무겁게 누릅니다.

살아남기 위해 비정한 일도 서슴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라면, 구차한 일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할 겨를도 없이 날이 가고, 세월이 가고, 낮과 밤이 숱하게 바뀌었죠. 조금은 세속적으로 지금껏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을 학대할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김범준 작가는 오십이라는 나이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는 현실의 나에게 위로 또 하나를 던집니다.

"오십이나 되었으니 노력하기를 멈추자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직장인으로서, 자영업자로서 자신이 맡은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자는 말이죠. 굳이 갖지 않아도 되는 과도한 부채 의식만큼은 스스로 조절하고 살자는 말입니다. 자기 나름의 쓸모를 부인하고, 세상이 바라는 쓸모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자기를 학대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린 혜자가 장자에게 말한 그 쓸모없는 나무가 아닙니다.

비록 보기 흉하지만, 세상 열심히 살아온 흉터로 모양도 좀 못나고, 여기저기 대신 내 가지를 내주느라 잘려나간 곳엔 흉물스러운 옹이가 아물어 있는 거죠. 누군가에게 순간 화들짝 놀라 보일 만큼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며, 누군가로부터 베임 당할 만큼 시기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서 있어도 좋다."라는 말은 제게 큰 위로로 들립니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그러고 보니 참 이 말이 저도 듣고 싶었습니다.

아직 인생의 짐을 다 내려놓지 못하는 처지에서 잠시 쓸모와 책임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우리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영혼이 전부 방전되기 전에 손을 들어 나를 토닥일 기운이라도 남아 있을 때 나를 적극적으로 위로하자는 말은 지금 이 시간 그 무엇보다 내게 따뜻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오십이 되었다고, 더 이상 스스로 쓸모가 없어졌다고,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쓸모의 정함이라는 칼자루는 내 것입니다. 왜 그걸 세상에, 다른 사람에게 맡겨 두고 괴로워하십니까. 내 쓸모는 내가 정하는 것이죠. 왜 남이 정하고, 함부로 나를 다루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오늘따라 유난히 창밖, 겨울비 후드득 거리는 소리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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