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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삶조각사 이지원 Dec 04. 2022

무엇이 중한겨? - 미라클모닝 1157일차

미라클 모닝의 기록

천근이라는 사람이 은양에서 노닐다가 요수 강가에 이르러 이름 모를 누군가를 만나 이렇게 묻습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되돌아온 답은 이러했습니다.

“썩 물러가라, 비천한 인간아. 어찌 그토록 불쾌한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느냐! (중략) 마음은 맑고 맑은 경지에서 노닐게 하며, 기는 넓고 넓은 경지에서 하나가 되게 하라. 만물의 자연스러움에 순응하고 사사로운 마음을 섣불리 일으키지 않는다면 세상은 저절로 다스려지게 될 것이니라.”

天根遊於殷陽(천근유어은양) 至蓼水之上(지료수지상) 適遭無名人而問焉(적조무명인이문언) 曰請問爲天下(왈청문위천하) 無名人曰(무명인왈) 去汝鄙人也(거여비인야) 何問之不豫也(하문지불예야) ··· 汝遊心於淡(여유심어담) 合氣於漠(합기어막) 順物自然而無容私焉(순물자연이무용사언) 而天下治矣(이천하치의)

- 장자 내편 〈응제왕〉 中에서


무엇이 중요한 걸까요?


저자 김범준은 그동안 제도와 규범 같은 외적인 틀에 갇혀

참다운 제 목소리 한번 크게 내보지도 못하고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제 제 목소리 한 번 크게 내보겠다 생각했더니 벌써 오십이랍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화두 하나를 툭 던집니다.

"당신은 청춘 때 기대했던 모습의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대놓고 한 질문도 아닌데,

가슴팍에서 뭐가 하나 덜컥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과연 나는 그런 모습의 어른이 되었을까.


지금의 나는 무엇이 중요한 걸까?


그러면서 저자는 천근이 물었을 때 세 가지 막말을 한 무명인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내 앞에서 꺼져라.

너는 수준 낮은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듣기 불쾌한 말을 함부로 입에 올렸기 때문이다.


천근이 무명인에게 했던 질문은

그냥 세상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가르침을 달라는 것뿐이었는데,

왜 그렇게 발끈하여 그리 막말을 쏟아냈는지,

문장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다음과 같은 부분을 찾아냅니다.


나는 세상 밖에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여유롭게 지낼 것이다. 

끝없이 넓은 저 들판에 살면서 말이다. 

그런데 너는 무엇 때문에 천하를 다스리는 일 따위로 내 마음을 흔들려 하는가.

以出六極之外(이출육극지외) 而遊無何有之鄕(이유무하유지향) 以處壙垠之野(이처광은지야) 汝又何帠以治天下感予之心爲(여우하예이치천하감여지심위)


처음에 뭐지 싶었습니다.

무명인이 천근의 눈엔 속세를 떠나 은거한 도인 같았을 겁니다.

그랬으니까 왠지 세상 다스리는 법 쯤은 알고 있을 거라 속단한 것이겠죠.

그런 그가 대뜸 성질을 내고, 자신에게 막말을 쏟아냈습니다.

그 이유가 위 발췌 부분이란 것이고요.


몇 번을 되새김하면서 읽던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 떠나 자연에 은거하려 꽤 오랜 시간 노력한 무명인조차도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관해 묻는 질문 하나에 저렇게 마음이 흔들리는데

하물며 속인은 나 같은 사람이야 ...,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씁쓸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이어지는 무명인이 가르쳐 준 '세상 다스리는 법'에 자꾸 마음이 갑니다.


"맑은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라. 당신의 기운이 넓은 세상과 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세상의 자연스러움에 순응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지극히 사사로운 마음, 섣불리 일으키지 않는다면 세상은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다."


그러면서 처음에 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무엇이 중요할까요? 지금의 나에겐.


우리의 젊은 날, 아닌 듯해도 참 불꽃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루하루 전쟁 같았습니다. 치열했어요.

벌어진 시간과 일어났던 크기만 조금씩 다를 뿐 누구나 우린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렇게 버티고 서있다는 건, 그 전쟁이 끝났고, 내가 이겼다는 거죠.

내가 적군을 짓밟고 이겨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하고자 하는 이김은 그 이김이 아니에요.

내가 포기하지 않고, 끝을 봤다는, 결국 결승선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의미의 이김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쟁을 끝맺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 이렇게 버티고 서 있다는 것.


그런 치열함의 포연을 뚫고, 여기 내 의지로 서있는 나에게

이제 조금 여유를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에는 놓쳤던 작은 것부터 담담하고 막막(寞寞)히 바라볼 수 있다면,

앞으로는 주변에, 지금 여기에 늘 존재하던 아름다움을 놓치는 잘못 또 범하진 않을 테니까.


나도 저자처럼 오십이 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음악들이 들립니다.

클래식과 재즈가 갖는 재미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루지 못한 것에 자꾸 마음을 쓰면, 지난 과거는 족쇄가 되지만,

작지만 보람 있게 이뤄 낸 것에 마음을 쓰면, 간질간질 어깨에 날개가 달려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오늘 하루도 중요하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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