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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Oct 19. 2023

상을 받은 기억

어린이때 만난 미술



초등학교 시절, 난 평범했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고, 말썽을 부리지도 않고 조용하기까지 한 존재감 약한 아이였다. 그러나 미술로는 존재감이 있었다.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친구들은 동그랗게 나를 감싸 구경했고, 선생님은 항상 내 그림을 예시로 보여주거나 잘 보이는 위치에 걸어주었다. 

이름 석 자보다는 그림 잘 그리는 애로 존재했다. 나도 그게 싫지 않았다.  

   

그림 그리기 대회 학교 대표를 지원받는 날이었다. 

“대회 출전할 사람! 손드세요!” 

모두 나를 바라보는 듯했지만, 차마 부끄러워 손을 들지 못한 채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갔다. 

내 마음은 물이 한껏 적셔진 옷처럼 무거웠다.


아까 손을 들 걸 그랬나?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뭐라고 말할까? 엄마가 싫어할 거 같은데.      

“엄마 오늘 학교에서 그림대회 대표를 뽑았는데, 난 손을 안 들었어.”

엄마는 내게 화를 터뜨렸다. 엄마는 나보다 더 나의 미술을 원하는 듯 했다. 

나의 그림 실력을 믿었고, 내가 미술을 전공하길 바랐다. 

당시 엄마는 나의 미술을 위해 나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나는 엄마가 무서워서 다음 날 선생님께 학교 대표로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히 엄마 덕분에 용기를 냈다. 엄마가 그때 내게 만약 ‘그래 네가 출전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 너의 뜻대로 해“ 라고 말했다면, 나는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다. 난 미술대회에 참가하고 싶었다.  


학교에선 4~6학년 각각 1명씩, 5학년이었던 나를 포함한 총 3명의 대표가 두 분의 선생님과 대회가 열리는 어느 학교로 가게 되었다. 서울에 많은 학교의 학년 대표들이 참가했다. 학교의 교정을 풍경화로 그리는 주제였고, 도장이 찍힌 도화지를 받았다. 학교는 아름다웠다. 계단에 앉아 야외용 이젤을 폈다. 

초가을 날의 날씨는 선선했고 햇살은 금빛이었다. 나무, 벤치, 담장, 수돗가, 운동장이 저마다 일광욕을 하듯 빛을 받고 있었다. 수채 물감은 나의 스케치 위에 부드럽게 발렸다. 

그림을 그리며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는데 내가 상을 받겠다 싶은 자신감이 생겼다.      


대회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생님들이 말했다.

“우리 학교 아이가 상을 받게 되니 여기까지 온 보람은 있네요.”

그 아이는 당연히 나 일거라 생각했다.

한 달 정도 후, 운동장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 앞으로 나가 상을 받았다. 서울에 있는 학교 대표들이 함께 한 그림대회에서 2등을 하게 되어 받은 결과였다. 


엄마에게 혼났던 장면, 대회장에 가던 날, 차 안에서 선생님들의 대화, 대회장 학교의 교정과 내가 그린 풍경, 검은색 야외용 이젤까지 대부분의 장면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 기억이 초등학교 시절 가장 강렬하게 행복했던 기억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림으로 큰 상을 받은 일은 삶에서 훅훅 따뜻한 자신감으로 올라왔다. 

훗날에도 이 기억이 자신감이 되고 있는 이유는, 스스로 했기 때문이다. 만약 어른의 도움이나 생각으로 그린 그림으로 상을 받았더라면, 결과는 챙길지라도 내 자신감을 챙기진 못했을 거다.     


엄마이며 선생으로 살면서, 아이들에게 ‘자신감’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느끼고 있다.

난 미술대회에 대하여 어른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은 어린이의 대회를 울퉁불퉁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 

어른이 도와준 ‘빼어난’ 그림보다 ‘정직한’ 그림이 어린이한테 어울린다. 자신감까지 챙길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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