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을 깼지만 눈을 꼭 감은 채 생각한다.
'아니야, 아닐 거야. 난 꿈을 꾸고 있는 걸 거야. 하나, 둘, 셋......'
'빰 빠라 빠라 빰 빠바! 쿵짝쿵짝!'
'아, 파짜오!' ('오 마이 갓' 정도의 느낌으로 쓰이는 태국어)
가혹한 현실이다. 이번 주말에도 학교에서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학교는 주말에 결혼식이나 생일잔치 등의 마을 행사에 강당을 빌려 주곤 하는데 요즘은 거의 매일 행사가 있다. "태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살아요."라고 말하면 모두들 내가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여기, 롬싹에서의 삶은 상당히 어수선하다. 요즘 같아선 내가 마치 신바람 이박사의 트로트 메들리가 무한 반복 재생되는 관광버스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학교 안 관사에서 살고 있다. 그것도 교장 선생님의 관사이다. 현재 교장 선생님이 현지 출신이기 때문에 관사를 사용하지 않고 비워두었고 그 덕분에 나는 다른 한국어 교원 선생님들보다 좀 좋은 환경의 집에 살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이라는 말이지 절대적으로 좋은 환경은 아니다. 학교 안에 관사가 있다 보니 출퇴근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다. 사실상 대중교통 수단이 전혀 없는 이 도시에서 만약 학교 밖에서 살았더라면 학교에 오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관사 바로 앞 건물이 하필이면 학교의 음악실이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각종 대회를 준비하는 브라스밴드, 전통 악기 합주단, 중창단, 합창단들의 연습이 끊이지 않고, 난 지독한 수준의 소음에 늘 노출된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주말에 강당에서 다른 행사라도 있는 날이면 학교 내 곳곳에서 생산되는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불협 소음들의 오케스트라로 나는 영혼까지 탈탈 털린 상태가 된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이런 경우 문제 해결의 주체가 매우 모호하므로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괜스레 속을 끓이는 건 나의 정신 건강에 몹시 해로울 뿐이다. 정 견디기 어려울 땐 호텔을 예약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이곳 롬싹에선 호텔 선택의 폭 또한 매우 좁다.
태국 공립학교 파견 한국어 교원은 기본적으로 관사를 제공받도록 되어 있다. 관사에 필수 구비 조건은 에어컨, 인터넷, 냉장고, 온수기, 침대, 책상, 옷장이다. (이 조건은 2017년 파견 조건이었고 2018년에는 전자레인지가 추가되었으니 현재의 조건은 더 좋아졌을 수도 있다.) 필수 구비 조건이 이렇게 구차할 정도로 디테일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관사의 환경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방콕으로 마중 온 학교 밴을 타고 7시간을 달려 밤늦게 도착한 첫날밤에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집의 상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고(물론 필수 구비 조건은 거의 갖춰져 있었다.) 내가 과연 이곳에서 지낼 수 있을지 없을지를 하루 밤새 결정해야만 했기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밤새 내린 결론은 머무는 것이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도와주러 온 태국인 선생님 몇 명과 대청소를 시작했다. 치워도 티가 나지 않는 대청소의 후유증은 응급실행과 이틀 동안의 입원으로 나타났다. 페차분 짱왓(짱왓은 우리나라의 '도'의 개념쯤 되는 태국의 지방 행정 단위이다.) 최초의 한국인 거주자가 청소를 하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전대미문의 사건은 두고두고 태국인 선생님들 수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학교의 교실 환경은 지역별로 천차만별이겠지만 한국의 교실 환경과 비교한다면 대체로 매우 열악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문제는 다양한 동물들과 교실 안에서 마주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대도시의 학교는 정도가 덜 하다고 듣기는 했지만 우리 학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동물 친구들이 살고 있다. 주로 개, 고양이, 새, 가끔 방문하는 뱀, 뭐 대충 이 정도? 남부 지방의 학교에는 개만큼 많은 원숭이들이 살고 있다고 하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태국에서 한국어 교원으로 살기 위해선 동물들과의 소통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단순히 학교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 조회에 같이 참여하고 종종 원하는 수업을 택해서 참관하며 가끔은 학교 식당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식사 지도를 하기도 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교실의 두 번째 문제는 덥고 습한 환경이다. 교실 평균 온도 섭씨 36도, 5월부터 9월까지인 1학기의 교실 평균 온도는 섭씨 38도에 육박한다. "교실에 설마 에어컨이 없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네, 교실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선풍기가 있지만 38도 이상의 온도에 40여 명의 학생들의 체온이 더해지면 교실의 온도는 측정 불가의 수준이 된다. 숨을 쉬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수업을 해야만 한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집중력은 점점 떨어지고 반응이 전혀 없는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해야만 하는 나도 기운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기운 빠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법. 리액션 없는 원맨쇼가 되더라도 수업은 태연하고 치열하게, 그렇게 계속되어야 한다.
이곳에서 나는 '크루 메이'라고 불린다. 가끔은 '아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크루'는 일반적으로 '선생님'이라는 뜻의 태국어이다. 주로 같이 일하는 태국 교사들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 학생들은 주로 한국말로 '선생님'하고 부른다. '아잔'은 주로 대학 교수나 자기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높여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인데 학교에 파견된 한국어 과목 교생 선생님이 나를 부를 때 '아잔'이라고 불렀다. 사실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는 게 나도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선생님'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의대 편입을 준비하던 중 친구와 찾아갔던 신점을 본다는 집에서 "뭐든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면 된다."라는 무책임한 말과 함께 "선생님이라는 소리는 듣고 살겠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다. 삶이란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가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도 선생님이 되었으니 가르쳐 주고 싶은 것도 많고 수업에 집중하고 싶은데 한국어 선생님은 언어 수업 이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대다수의 한국어 교원들은 학교에서 '춤놈'이라고 불리는 문화 수업을 같이 담당한다. 언어 수업과 함께 문화 수업을 병행하는 것은 취지도 좋고 필요하다는 당위성도 인정하지만 제대로 된 자료나 재료 지원 없이 심지어 멀티미디어 수업 환경조차 갖추지 못한 교실에서 4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수업에는 한계가 있다. 많은 선생님들이 자비로 각종 활동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한다. 학교로부터 겨우 12,000밧(2017년 기준 환율 약 400,000원, 물론 한국의 교육부에서 소정의 체재비를 따로 지원받기는 한다.)의 급여를 받는 선생님들이 연 만들기 재료나 붓글씨 체험을 위한 재료, 심지어 한국 음식 만들기 체험을 위한 식재료들을 개인 주머니를 털어 구입한다. 그렇게라도 구입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롬싹에서는 한국 식재료를 전혀 구할 수가 없고 방콕이나 치앙마이 같은 대도시로 가야만 한다. 김밥이 먹고 싶다는 학생들을 위해 7시간 버스를 타고 방콕에 김을 사러 가야만 하는 것일까?(한국 문화에 대한 열광적인 관심의 증가로 지금은 롬싹이나 페차분에서도 웬만한 한국 음식 재료는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한국 농수산물 유통공사 같은 곳에서 한국어 교원이 파견되어 있는 학교에 일정량의 고추장, 된장, 참기름, 불고기 양념 등의 식재료를 제공해주어 받아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떡볶이는 고추장만으로 만들 수 없고 불고기 역시 양념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설령 만들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왠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다. "한국어 선생님은 반드시 한국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요?"라고. 학교의 다른 언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선생님들은 그 누구도 문화 수업 시간에 요리를 하지 않는데 한국 선생님들은 왜 요리를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저 '크루 파사 카올리' 한국어 선생님이다. 한국어 선생님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알리며 한국어를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