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성욱 Oct 05. 2023

만원의 가치

잘 지내던 아이가 토요일 저녁 갑자기 열이 39도를 넘었다.

저녁상을 차리다, 고열에 힘들어하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향한다.

여름 물놀이철과 에어컨 때문에 응급실은 아이들로 넘친다.

아마도 주말저녁인 게 한몫한듯하다. 


진료는 거침없고 준비할 시간을 주기 않는다.

아무런 설명도 예고도 없이 아이의 콧속으로 기다란 면봉이 '쑥' 하고 들어갔다.

당황할 새도 없이 코로나와 독감검사를 마쳤다.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달래느라 항의할 새도 없다.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모두 '음성'이라는 결과를 받고 응급실 안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의 목이 많이 부었단다.

지난 며칠 컨디션이 안 좋긴 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엄마의 안일한 생각이 아이를 더 아프게 했나 보다. 다행히 받아온 약을 먹고 열은 금세 내렸지만, 삼키는 게 힘든 아이는 잘 먹지 못하니 기운이 없다.

할 수 없이 며칠  집에서 쉬며, 잘 먹고 컨디션을 회복하기로 했다. 기력 없는 아이를 보니 죄책감이 해온다.


월요일 아침이다.

아이가 며칠 등원하지 못하니 정해진 일정들을 조정해야 한다.

점심 약속은 다음 주로 미루고 토론 발제문을 써야 하는 모임에는 양해를 구하고 다음 순번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 담임 선생님에게 문자를 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아마도 아이는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불쑥

"엄마 좋아하는 커피 사 먹어"하며 아이가 돈을 건넨다.

지난번 할아버지 생신선물 사느라 저금통에서 돈을 꺼냈던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엄마에게 만 원짜리 하나를 건넨다.

"나 돌보느라 힘들지 미안해. 엄마 좋아하는 커피 먹고 힘내"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아이의 말이 가슴에 꽂힌다.

"뭐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힘들게 해서"


아이의 행동에 나의 죄책감은 배가 됐다.

어떻게 아이는 이 순간에 이런 행동을 할까?

차라리 아파서 떼를 쓰거나 짜증을 내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내가 은연중에 이런 행동을 강요한 것은 아닐까 곱씹어 본다.

아이의 어른스러움은 어른인 내게 숙제를 준다.

아이도 엄마도 앞에 놓이는 숙제를 풀며 함께 성장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다.


나에게 남겨진 숙제만큼의 무게로 만원을 귀하게 받기로 했다.

그날의 커피는 쓰기도 달기도 한 최고의 커피였다.

남는 돈으로는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주고 소아과로 향했다.

한 시간 넘는 지루한 대기 시간이 무색할 정도 우리는 그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아이의 감기는 나에게 숙제도 행복도 주었다.

아이는 한 번씩 병치레를 하며 훌쩍 크고 엄마도 아이의 아픔을 함께하며 커간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당부한다.

"이든아 아픈 거 미안해하지 마, 안 아픈 사람은 없어. 이든이가 아프면 돌보라고 엄마가 있는 거야"

아이의 미안한 마음을 지우는 것, 일단 오늘의 숙제는 여기까지다.

또 내일은 어떤 숙제를 풀게 될까?


작가의 이전글 황금색 국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