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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Mar 31. 2022

혼자 살면서 배우게 된 것들

간호학과 학생은 어떻게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었나 - 6

처음 휴학을 결심하고 자취를 선언했을 때에는 자신만만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서 청소, 빨래 등 살림에 꽤 익숙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리는 레시피 보고 그대로 따라 하면 되고, 누군가와 생활 양식을 맞출 필요도 없으니, 기숙사 생활보다 더 쉽겠는데? ...라고 오판했다.


엄마가 서울로 올라오셔서 방을 같이 구하러 다녔다. 노량진이어서 그래도 싼 편 아닐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고시생들이 몰리면서 점점 비싸지고 있다고 중개사분이 알려주셨다. 그래서 알바하던 학원 근처이자 노량진 역 근처인 곳은 엄두도 못 냈다. 학원에서 걸어서 20분쯤 되는 곳에 방을 구했다. 나름 큰 도로 근처에 있으면서 1층이고, 현관을 열면 바로 방이 있는 게 아니라 복도가 있어서 누군가의 침입으로부터도 안전한 곳이었다. 



외적인 요소를 많이 신경쓰다 보니 방은 형편없이 작았다. 월세 40만원에 관리비 5만원이었지만 사람 두 명이 누우면 끝나는 크기였다. 그래도 제일 끝 방이라 화장실은 넓었다. 그 점은 마음에 들었지. 창문은 노트북 화면 크기만한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굵은 창살로 막혀있고, 30cm도 안 되는 거리에 건물이 세워져 있어 햇빛은 전혀 들지 않았다. 현관에서부터 이어지는 복도는 너무 좁았다. 만약 화재가 나서 다들 문을 열어놓고 대피를 할 경우, 제일 안쪽 집인 나는 나가지도 못하는 구조였다. 창문으로 나가지도 못하니 현관에서 불이 나면 그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구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어떻게 그런 집에 살 생각을 했을까.


방을 구하러 돌아다니면서 더 열악한 환경의 집을 많이 봐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첫 자취의 꿈에 부풀어있었던 탓인지, 나의 첫 자취방이 마냥 좋았다. 방을 6개월만 계약하려니 안 된다고 하는 집주인분도 많았는데(당연하지), 이 곳 집주인 할아버지는 흔쾌히 계약해주시고 친절하셔서 좋았다. 너무 좁아서 기본 옵션이었던 책상을 빼달라고 요청했는데 단기 세입자의 이런 요청도 모두 들어주셨다. 여튼 무사히 입주를 했다.


자취의 로망을 즐길 새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집에 들어오면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고의 반복이었다. 주 6일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나서야 로망을 하나둘씩 이룰 수 있었다. 혼자 살다보니 챙겨야 할 것도 많았다. 제일 크게 와닿는 부분은 세금이었다. 전기세나 가스비는 직접 내야했는데, 계좌 송금으로 낼 수도 있고 은행에 가서 낼 수도 있다. 집 바로 앞에 새마을금고가 있어서 직접 내는 것이 더 편했다. 고지서와 현금을 들고 세금 내러 왔다고 하면 알아서 내주시고 완료 도장까지 찍어주신다. 송금으로 보내면 제대로 갔는지, 비용을 맞게 보냈는지 불안한데 은행에 오면 그런 불안을 안 느껴도 돼서 은행을 자주 이용했다.


창문이 작아 점점 꿉꿉해지는 집안도 문제였다. 물먹는 하마를 사서 여기저기 놔뒀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현관, 문, 창문 모두 열어두고 바람길을 만들어줘야 어느정도 환기가 됐다. 에어컨도 아끼지 않고 틀었다. 햇빛이 들지 않으니 형광등을 켜도 특유의 어두침침한 느낌이 강했다. 지금 내가 집을 본다면 1순위로 생각하는 것이 채광인데, 이 집에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다. 


이런 곳에서 종일 혼자 있으니 사람이 점점 우울해졌다.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집 밖으로 자주 나갔다. 정말 철저한 집순이인데(방학 때는 집밖으로 몇 번 안 나갈 정도) 억지로라도 나갔다. 나가서 괜히 꽃구경도 하고 빵도 사오고 하면 그래도 기분이 좀 풀렸다. 기분이 우울하다는 사실을 인지 못할 때도 많은데, 시간을 정해서 나가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아 내가 우울했구나를 깨달았다. 


돈을 모아 카메라도 샀다. 여기저기 찍으러 다닌다는 이유가 집 밖으로 나갈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노량진 시장 특유의 골목 분위기를 찍은 사진도 있다. 사진을 원래 좋아했는데 더 좋아하게 된 경험이다.


또 집 안에 있을 때도 분위기를 업시키기 위해 영상을 많이 틀어놓게 되었다. 트위치라고 스트리머들이 생방송을 하는 플랫폼이 있는데, 이때 처음 접하게 되었다. 스트리머들이 수다를 떠는 방송을 틀어놓으면 괜히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루종일 틀어놓기도 했다. 지금도 작업할 때 꼭 영상을 틀어놓고 하는데, 이때의 버릇이다.


요리에 소질이 있으면서도 경험이 없어 서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엇인가를 끓일 때 충분히(?) 끓여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냥 끓어오르면 불을 끄면 되는 줄 알았다. 나름 육수를 내서 된장을 끓였는데 그냥 물에 된장 푼 맛이 나서 왜 그러지? 했는데 보글보글 끓자마자 불을 꺼서 그런 것이었다. (...)


조금씩 하면서 요리 실력도 늘었다. 아빠가 서울로 출장 오신 날에는 계란국에 두부에 김치전까지 해서 밥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사실 김치전은 반죽을 덜 섞어서 어느 부분은 짜고 어느 부분은 싱거웠지만... 한 상을 차렸다는 게 뿌듯했다.


새로운 취미도 생기고 혼자만의 적적함을 이겨내는 방법도 배우면서 '혼자 사는 나'는 꽤 큰 성장을 했다. 휴학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 달라졌다. 사회 생활도 하고, 돈도 벌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일 모두 해보면서 시야가 더 넓어졌다. 휴학을 했음에도 계속해서 나를 챙겨주는 친구들 덕분에 인간 관계를 소중히 하는 법도 알았다. 


자취방 계약이 끝나고 대구로 내려가는 날이었다. 나는 자취방 빼는 게 처음이어서 그냥 가면 되는 줄 알고 서울역으로 갈 뻔했다. 알고 보니 사장님과 방이 깨끗한지 확인하고 보증금을 그 자리에서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데 그땐 몰랐다. 사장님과 마무리 인사를 하고 보증금 송금까지 확인하고 집에 내려왔다.


짧았지만 알찬 자취 생활은 아직까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고 나를 소중히 여기게 해준 예쁜 추억이다. 다시 자취를 한다면 조금 더 큰 방에 채광도 잘 되는 곳으로 골라 알차게 살 계획이지만, 이 곳만큼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경험은 없을 것 같다. 여러분들도 자취 한 번 해보는 거, 추천한다! 혼자 사는 것은 생각보다 더 귀찮고, 힘들고, 외롭고, 챙겨야 하는 것 투성이면서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경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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