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린이의 나름 성공적이었던 첫 지리산 정복 일기
"지리산 갈래?"
"...?"
나는 내 친구들과 서로 시간을 내어 작년 11월 27일 한라산에 다녀왔었고, 올해 8월 18일 한라산에 갔던 친구 몇 명과 새로운 친구 한 명과 함께 지리산을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어리석은 사람도 오래 머물면 지혜로워진다'하여 붙은 이름 지리산.
지리산에 정상은 '천왕봉'이라고 하며, 이곳에 가기 위해 정말 다양한 코스들이 존재한다.
자세한 난이도와 종류는 사이트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우리는 중산리 장터목 대피소 코스로 올라가서, 장터목 대피소에서 하룻밤 잠을 잔 다음 아침 4시쯤 일어나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지리산을 가기 위해 출발한 당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설상가상 지리산 입구 전부가 전면 통제가 되어 버렸다.. 이것 또한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하니, 날씨가 좋지 않다면 꼭 확인하고 가길 바란다..!
이미 지리산을 향해 차를 타고 가고 있던 우리들은 제발 산이라도 올라갈 수 있길 바라며 지리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할 때 즈음 비가 조금씩 개기 시작하였고 사이트에 다시 들어가 보니, 다행스럽게도 부분통제로 변경되어 지리산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원래 오르기로 했던 코스는 여전히 통제가 풀리지 않아, 장터목대피소 대신 로터리 대피소를 거쳐 천왕봉을 향하는 코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PM 3:00 탐방로 입구 도착 ~ PM 5:30 로터리 대피소 도착
그렇게 오후 3시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지리산 산행을 시작했다.
천왕봉에 가기 위해서 하룻밤 자고 가야 했던 우리는 로터리 대피소에 들렀고,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5시 반쯤 되었으니 입구부터 로터리 대피소까지는 약 2시간 반 가량이 걸렸던 것 같다.
우리 지리산 일행은 체력이 제각기 달라 중간중간 고비도 많았지만, 낙오자 없이 완등이 목표였던 우리는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쉬엄쉬엄 올라갔다. 실제로 등산로 곳곳에는 심장질환이 많이 발생해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가 곳곳이 비치되어 있다.
그렇게 도착한 로터리 대피소에서 확인해보니 우리 일행만 대피소를 예약했고 덕분에 공용으로 사용하는 숙소를 독채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를 뚫고 산에 오른 덕분에 잠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잘 수 있었다. (다만 대피소는 씻는 곳도 침낭도 없고 화장실조차 청결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더운 여름날에는 잠을 청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숙박을 위해선 예약을 꼭 해야 하니 사이트에서 대피소 예약을 미리 하고 가야 한다..!
PM 6:00 내 생애 가장 맛있었던 라면 & PM 9:00 대피소에서 취침
그렇게 대피소에서 우리가 직접 준비해온 라면과 밥을 먹어 허기를 해결 한 뒤, 뒤늦게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고 마침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야 했던 우리들은 곧바로 잠에 들 수 있었다.
AM 04:00 1차 기상 & AM 08:00 2차 기상
그렇게 어느새 찾아온 새벽 4시..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일어났던 우리들은 다시 한번 절망에 빠졌다.
우리가 잠이 든 새벽에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하여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가 통제된 것이다. 빗물 때문에 내려가는 산행조차 쉽지 않았던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퇴실시간인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고 그때 날씨를 보고 향후 계획을 다시 세우기로 하며 잠이 들었다.
아침 8시. 정말 다행스럽게도 새벽 6시쯤 통제가 풀렸었고 우리는 천왕봉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천왕봉 일출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천왕봉만큼은 가야 한다며 우리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다시 등산 시작.
AM 8:30 2차 등반 시작 ~
로터리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더욱더 거친 암석들이 나타났고, 경사면은 더욱 가팔라졌다. 난 등산 스틱도 없어서 장갑을 끼고 올라갔는데 거의 4족 보행을 하며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 AM 10: 00 '천왕봉' 도착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천왕봉, 나는 정말 한치의 과장도 없이 '천하를 발아래 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리산 옆에 붙어 있는 높게 솟아오른 산봉우리들과 그 산봉우리를 덮고 있는 구름과 안개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위에 서서 바라보는 장관은 아직 나의 글쓰기 능력으로는 이 아름다움을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이 어설픈 글쓰기로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다가 실수로 아름다움을 훼손시킬 것 같아 최대한 절제하고 정제된 표현만 사용하였다. 정말 내가 본 경치 중 가장 절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난 꼭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 지리산 천왕봉에서 내가 느낀 감정과 기분에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
산행을 마치고 나서 , 난 집에 돌아와 보니 오후 늦은 시간.. 스케줄 신청을 잘못하여 바로 출근을 해야 했고 하필 퇴근 시간마저 아침 7 시인 야간근무를 해야 했다. (정말 퇴근 한 다음 며칠 동안 뻗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겨우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와 일상생활이 완전히 가능해져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추억과 땀에 젖은 글을 쓰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도 오랜 시간 머물면 지혜로워진다 하여 지리산이라.. 솔직히 처음 가본 지리산, 오랜 시간 머물지도 않았고, 준비도 하고 가지 않았던 나에게 지리산은 지혜를 주지 않은 것 같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싶기도 하다. 겨우 한번 가놓고 심지어 오래 머물지도 않은 나에게 지리산의 지혜가 생기길 바란다? 도둑놈의 심 보지.. 지리산의 지혜는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조차 가볍게 내주는 선물은 아닐 터,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라면 꼭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지리산을 정복하여 지리산이 주는 지혜를 받아오길 바란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지리산 산행을 성공해냄으로써 나 같은 사람조차도 한반도 내에서 가장 힘들다는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왔다는 사실은 내 인생의 무언가 해내었다는 커다란 성취감을 기록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내가 계획한 것들이 하나둘씩 틀어져서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앞에 보이는 문제들을 동료들과 함께 헤쳐나간다면 또 다른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낀 귀중한 시간이었다
...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