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를 이야기하다. 철학책 같은 소설)
내일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주인공 노라 시드, 더 이상 세상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죽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노라의 바람과는 달리 사방이 온갖 초록색 책으로 가득한 '자정의 도서관'에서 눈을 뜨게 된다. 그 도서관에는 예전에 노라가 다닌 학교의 도서관 사서, 엘름 부인이 서 있었다.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던 노라에게 엘름부인이 말한다. 자정의 도서관이 존재하는 동안 그녀가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으며 이제부터 어떻게 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결정을 도와줄 수많은 책들이 노라에게 있다. 노라의 수많은 삶들이 쓰여 있는 책들.
삶과 죽음 사이에는 도서관이 있단다. 그 도서관에는 서가가 끝없이 이어져 있어. 거기 꽂힌 책에는 네가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살아볼 기회가 담겨 있지.
네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볼 수 있는 기회인 거야......
후회하는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하나라도 다른 선택을 해보겠니?"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생각해 보면 요즘에는 점점 더 그랬다. 노라는 자신이 되지 못한 사람, 이루지 못한 일들의 관점으로만 자신을 보았다. 정말이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후회가 끝없이 반복되었다. 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어. 빙하학자가 되지 못했어. 댄의 아내가 되지 못했어. 정말로 좋은 사람 혹은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했어. (고양이) 볼테르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어."
그렇게 노라는 자정의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 엘름부인의 안내로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살았을 수도 있는 '다른 노라 시드의 삶'을 살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완벽한 삶을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하지만 원래 삶에서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또 다른 삶을 경험하기 때문에 방문한 그 삶의 노라가 어떤 옷을 즐겨 입는지, 술에 강한지, 약한지,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는지, 아님 운동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지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 구글에서 자신을 검색하고, 이메일을 열어보고, 핸드폰 연락처와 메시지, SNS 계정을 보면서 그 삶의 노라를 연기하는 배우처럼 지내게 된다.
개인적으로 절망의 벼랑 끝에서 죽음을 선택한 노라가 부러웠다. 자살을 시도한 후 살지도 죽지도 못한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결과적으로는 후회로 가득 찬 인생을 다시 한번 되돌릴 수 있었고 그 삶이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는 삶인지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특권처럼 느껴졌다. 나 또한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결과에 대해 만족한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아니 대게는 실망스럽고 힘든 적이 많았다. 어떤 결정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니면 어떤 결정을 내렸던 것에 대해서 후회한 적이 많았다. 현재 내 삶이 불안정하고 뭔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낄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후회의 책' 챕터를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인, 그 어떤 공간에 간다면 내 후회의 책들은 어떤 내용들로 가득 차 있을까? 그리고 내가 살았었을 수도 있는 삶의 책들은 얼마나 많을까?
체스는 쉬운 게임이지. 하지만 잘하기는 어려워. 네가 수를 둘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의 세상이 열리거든. (중략) 게임이 시작될 때는 변화수가 없어. 기물을 배치하는 데는 한 가지 방법뿐이야. 하지만 첫 여섯 수만 둬도 변화수는 9백만 개나 된단다. 여덟 수를 둔 뒤에는 2888억 개의 다른 위치가 나올 수 있지. 그리고 그런 가능성은 계속 증가해. 관측 가능한 우주의 원자 양보다 체스를 둘 수 있는 방법이 훨씬 더 많아. 그래서 아주 복잡해지지. 그리고 체스를 두는 데 올바른 법은 없어. 그저 많은 방법이 있을 뿐이야. 인생과 마찬가지로 체스에서는 가능성이 모든 것의 기본이야. 모든 희망과 꿈, 후회,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의 기본이지."
무한한 삶의 가능성을 맛보며 이 삶에서 저 삶으로 여행을 즐기는 또 다른 이동자 ‘위고'와는 달리 노라에게는 정착할 곳이 필요했다. 가장 완벽한 삶을 발견하면 늙어서 죽을 때까지 그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엘름 부인의 말과는 달리 마지막으로 머물고 싶었던 삶에서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된 노라는 혼란스러워지고, 그와 동시에 도서관 전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시간이 멈춰있던 자정의 도서관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죽음의 문으로 가까워지는 시간...
노라는 누구의 꿈도 아닌, 누구의 삶도 아닌, 원래 본인 자신이 만드는 삶을 되찾고 싶었다. 후회의 책을 포함해 모든 책들이 불타 없어져 가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아." 노라가 외쳤다.
"살고 싶다."
"나는 살아 있다."
노라는 더 노력해야 했다. 늘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삶을 원해야 했다. 이 도서관이 그녀의 일부인 듯, 다른 인생도 그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른 삶에서 느꼈던 감정을 모두 느끼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녀에게는 능력이 있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여행가, 와이너리 대표, 록스타, 지구를 살리는 빙하학자,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생, 엄마, 혹은 그 외의 백만 가지 사람이 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놓쳤을지 몰라도 노라는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그런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녀였다. 그녀는 그 모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한때는 그 사실이 우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극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마음먹고 노력하면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살았던 삶에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빠가 살아 있었고, 이지도 살아 있었고, 노라는 리오가 문제아로 자라지 않게 도와주었다. 가끔은 덫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은 그저 마음의 속임수일 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포도밭을 소유하거나 캘리포니아의 석양을 봐야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넓은 집과 완벽한 가정도 필요치 않다. 그저 잠재력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노라는 잠재력 덩어리였다. 왜 전에는 이걸 몰랐는지 노라는 의아했다.
우리는 한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한 존재만 느끼면 된다. 모든 것이 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무한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늘 다양한 가능성의 미래를 품고 있다. .... 살아보지 않고서는 불가능을 논할 수 없으리라.... 삶에서 고통과 절망과 슬픔과 마음의 상처와 고난과 외로움과 우울함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날까? 아니다. 그래도 난 살고 싶을까? 그렇다. 그렇다. 천 번이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진 않지만 평행우주, 양자역학, 다중 우주 이론, 멀티 유니버스와 같은 세계관을 다룬 영화들이 생각났다. 영화 인터스텔라와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그리고 아이언맨의 최후를 지켜봐야 했던 엔드게임. 아마 이 책이 영화로 나온다면 비슷한 맥락으로 연출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앞서 나온 영화들은 절대악 빌런이나 환경 위기로부터 지구의 멸망을 막고 인류를 구하게 되는 히어로물이고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광활한 우주에서 본질적으로 보잘것없고 무의미한 한 인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철학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에서 다를 것이다.
아무튼, 노라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이 자신이 도망치고 싶었던 바로 그곳임을 깨닫고 돌아오게 되는 여정을 지켜봤다. 삶이 얼마나 광활한지 경험했고,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보았다. 또, 그 속에서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뿐 아니라 느낄 수 있는 감정도 한없이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라는 자신에게서 달아날 수 없었고 그 사실에 진정으로 감사해했다.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었고 한 템포도 쉬지 않고 책의 끝부분까지 읽어 내려갔다. 무겁고, 다소 지루했던 앞부분을 꾸준히 읽은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노라는 다시 그 인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더 이상 블랙홀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황무지를 돌보고 가꾸기로 한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니체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