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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노트 Jul 10. 2022

내가 달리는 이유



  US 1 국도는 플로리다에서 뉴욕을 잇는 가장  국도 중 하나다. 플로리다에서 차로는 사흘 밤낮을 달려야 뉴욕에 도착하는  국도는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여행코스로도 꼽힌다. 유학 생활을 마무리한 후 차에 배낭 하나 싣고 이국도를 따라 뉴욕까지 가보고 싶었다. 마이애미 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Fort Saint Lucie 도시를 지날 쯤 중고차 회사들이 길게 이어졌고  끝에 왼쪽으로 들어가는 아파트 입구가 나온다. Kitterman Apartmant 새겨진  돌판 옆 아파트를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입구를 따라가면  호수를 둘러싼 3층짜리 아파트 단지가 있다


  내가 묵는 단지는 가장 안쪽에 있었으며 그 옆으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뒷문이 있다. 문을 따라 나가면 Ford 사의 F-150 두 대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긴 도로(약 3Km 정도 된다)가 있고 그 옆에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 건물 하나 없이 나무와 호수로 이어진 이 길이 참 맘에 들었다. 해가 뜰 땐 오른쪽 하늘에서 주황빛을 내보였고 해가 질 땐 왼쪽으로 자줏빛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달리기 딱 좋은 코스라고 생각했다. 뒷문부터 저 멀리 이어진 이 길은 바라만 봐도 속이 뚫리는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길을 달릴 때면 한강처럼 붐비는 사람들도 그 옆에 시끄럽게 지나다니는 차들도 없이 숨 가쁜 소리와 두발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가끔 지나다니는 차에서 창문을 내려 손으로 엄지를 보여주는 사람들,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여유로움과 웃통을 벗고 달려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이 자유로움이 좋았다. 심장이 터질 듯 숨이 차올랐지만, 더 빨리 달릴수록 이 자유로움에 더 깊이 빠졌다. 오직 달리고 있을 때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원래 달리기를 싫어했고 이렇게 매일 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달리기는 내게 아직도 즐기는 운동이 아닌 매일 나를 누르는 압박감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압박감에서 매일 벗어나기 위해 죽도록 뛰기 싫어도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나간다


다시 말하면 달리기는 내가 좌절을 견디는 있는 방법이다. 


  살면서 모두 앞에서 창피를 당할 만큼 부끄러운 좌절도 있었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함에 한숨이 절로 나는 일도 있었다. 내가 경험한 좌절은 대부분은 실패한 경험에서 끝나지 않고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군 생활 당시 특수전 교육단 입교를 위한 시험에서 떨어져 부대로 돌아왔을 때 주변에 눈총과 함께 휴가 제한을 받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지만 차였을 때 거절에서 끝나지 않고 이 사실을 부풀려 퍼뜨린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 때문에 오랜 시간 내 뒤에서 나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안줏거리가 됐다. 


  실패한 것도 서러운데 그 대가를 치르는 그땐 참 많이 힘들었다. 아니 쪽팔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을 눌렀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한동안 침대에서 나오지 못한 이유도 나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를 누르는 이 힘을 밀고 일어날 방법을 몰랐다. 현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췄다. 계속 눌려있다 보니 행동과 생각과 속도가 달라졌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나 유튜브 아무거나 틀어놓고 생각을 멈춘 채 흘러나오는 영상을 보고 있는다. 멍하니 있지만 마음은 일어나야 한다고 반복해서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비행을 위해 미국에 도착해 수업을 듣는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코로나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았다. 언제 다시 문을 여는지 비행은 언제 재개할 수 있는지 언급은 전혀 없었고 며칠 뒤 코로나가 크게 확산하며 플로리다주 전체가 셧다운됐다. 마트와 식료품점에는 물건이 동났고 심지어 동양인을 안 좋은게 바라보았다. 뉴스에서는 지나가던 동양인에게 해를 가했다는 뉴스가 주기적으로 보도됐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비행을 배우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은 언제 풀릴지 모르는 상황 속에 다들 걱정하고 있었고 한국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모이면 이 코로나 기간에 비용을 줄이며 유학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결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의 불안감을 다독였다. 특히 비행을 배우는 유학생활은 큰 비용이 소모되므로 빠르게 마무리하고 귀국하는 것이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는 일이었다. 발 빠른 한국인 친구들 몇몇이 짐을 쌌고 이어 30대 중 후반을 바라보는 형들 역시 그동안 꿈꾸었던 비행을 접고 아쉬운 마음으로 귀국했다.


   나는 버티는 것을 택했다. 그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셧다운은 두달 조금 넘게 이어졌다. 어느때보다 긴 두 달을 보냈다.


  그때마다 달렸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이 시기마다 나는 달렸다. 그러면 끝나지 않을  같은 고통의 시기도 언젠간 . 한참 지난 후 뒤돌아봤을  오히려 무언가 하지 않고 이 시기를 지나쳐 버린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다시 좌절을 맛볼 때 무언가 하나라도 배우자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닥치면 모든 의욕조차 사라졌다. 하지만 이대로 눌려있을 수만은 없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용기를 내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낮에 뜨거운 햇살과 태양이 저물 때쯤 시원한 바람이 숲 냄새를 몰고 왔다. 진정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는지 바람과 함께 나는 흙과 나무와 여러 땅의 냄새가 낯설지 않았다. 뒷문을 나서면서 길게 늘어진 도로의 적막을 한 걸음 한 걸음 깨며 달렸다. 너무 오래 쉬었던 탓인지 몇분도 채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오며 결국 턱 끝까지 차올랐다. 다리는 무거워졌고 땅으로 푹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걷고 싶었지만 다시 달릴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아 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달려 도로 끝 STOP 표지판을 기점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호흡이 정리되고 눈앞이 선명해졌다. 처음 뛰던 방향에서 볼 수 없었던 구름과 자줏빛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달리면 달릴수록 짧았던 호흡이 길어지고 온몸에 근육이 회복되는 느낌에 한 바퀴 정도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 바퀴를 달리기 위해 시작 지점을 돌았을 때 처음엔 보이지 않던 저 멀리 반환점이 보였다. 여전히 숨이 차고 몸은 무거웠지만, 엔돌핀이 심장 한 가운데에서 손끝 발끝으로 퍼져나갔다. 언제 흐르는지도 모르게 땀은 온몸에 흐르고 있었고 무겁던 발은 점점 가벼워졌다. 작용 반작용에 법칙이 여기도 통한 건지 여전히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고통스러운 만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함께 온몸에 흐르고 있었다. 이때야말로 온전히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번째 바퀴를 마무리하고 터질듯한 호흡을 정리했다. 내쉬는 가쁜 호흡마다 해냈다는 말이 뱉어졌다. 온몸이 심장인 것처럼 두근거림이 잦아지고 난 뒤에야 집으로 걸어갔다. 이미 달릴 때 터질듯한 호흡과 이십 분 남짓 지루한 시간을 마주한 탓에 달리러 나가기 전 나를 누르는 압박감은 더 커졌다. 오히려 달리는 것보다 달리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눌려있는 채로 지나쳐 후회를 남기고 싶진 않다. 


  내 삶의 최소한은 달리는 것이라고 정했다. 그렇게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소파에 앉아 신발 끈을 묶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문밖을 나선다. 자줏빛 하늘, 숲과 흙을 담은 초록색 바람, 러닝 코스, STOP 표지판은 모두 그자리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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