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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노트 Aug 12. 2022

첫 비행

  일상은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었다. 코로나에 발 빠른 대처로 학교는 줌으로 수업하기 시작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 모두 낯선 수업 방식에 아직 미숙했다. 화면 전환이 어려워 수업이 취소되는가 하면 마이크를 끄지 않아 주변 잡음이 모두에게 들린 적도 있었다. 


  실수가 가득한 수업이었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모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이론교육이 진행되고 한 달이 지날 때쯤 학교에서 활주로를 오픈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비행할 때도 학교 내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했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먼지만 쌓여가던 비행장비를 꺼냈다. 사용하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건 아닌지 매일 생각했었다. 한 명씩 비행 교관이 배정되고 비행 스케줄을 문자로 받았다. 한국에서 온 우리 세명과 같은 신입생 중 베트남 친구들이 이십 명가량 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먼저 비행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방안에만 있을 땐 비행을 할 수만 있다면 뭐든 다 좋다고 생각했다. 막상 먼저 비행하러 가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불만이 쌓여갔다. 학교에 따지기도 해봤지만 기다리라는 답만 받았다. 


  또 그렇게 이주 정도 지났다. 결국 나에게도 첫 스케줄이 잡히니 드디어 비행을 할 수 있다는 설렘과 긴장감에 이전에 불평했던 이유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베트남에서 학생을 많이 보내 우선권을 주지 않았나 싶었다.


  내 첫 비행 날짜는 5월 13일 오전 7시로 잡혔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도착한 지 세 달 만에 시작하는 비행이었다. 전날 짐을 다 챙겨놨다는 가정하에 씻는 시간 30분, 학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 30분 그리고 비행 30분 전 도착. 학교에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새벽 5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나는 잠이 많았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했지만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비행을 한다는 설렘과 긴장이 단숨에 깨워줄 것이라고 믿었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그날의 날씨였다. 플로리다의 5월은 그렇게 나쁜 날씨는 아니었지만 하루에 세네 번씩 15분 정도 짧은 뇌우가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낮은 하늘에 더 낮게 깔리는 구름은 도시 전체를 집어삼킬 듯 거센 비바람과 천둥번개를 함께 몰고 왔다. 예측할 수 없는 이 짧은 시간에 비행시간이 겹치면 학생들은 모두 당연하다는 듯 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땐 몰라도 첫 비행 날 만큼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새벽 5시, 다행히도 하늘은 맑았고 아직 어두운 플로리다 밤하늘에는 별이 많이 보였다. 전날 미리 싸 둔 짐을 문 앞에 두고 주방으로 갔다. 찻장을 열어 커피 캡슐을 머신에 넣고 커피를 내리고 빵에 잼을 발라 아침을 간단히 먹었다. 긴장해서 채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계획한 대로 6시쯤 분 밖을 나섰다. 첫 개시한 비행 유니폼을 입고 비행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름 멋있었다. 진짜 조종사가 된 것 같았다. 그들이 매일 나서는 출근길을 상상해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꽉 막히는 올림픽대로 위 그 누구보다 행복지수가 제일 높을 것이다. 


  학교에 도착해 교관을 만났다. 내 첫 교관은 과묵한 러시아 사람이었다. 정확히 국적을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름이 코브로 끝나는 것 보고 알 수 있었다. 보통 ~코브나 ~스키로 끝나는 이름은 러시아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이름에 킴이 들어가면 얼굴을 보지 않아도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와 함께 여권과 신체 검사서 등을 제출하고 비행기를 배정받는 디스패치로 들어갔다. 아침 이른 시간이었지만  학교에 있는 활주로도 민간항공기가 들어오는 작은 공항이라 번거롭더라도 여권을 들고 다녀야 했다. 비행기 키를 들고 드디어 주기장으로 향했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져있는 많은 비행기들을 보니 드디어 실감이 났다. 


  오늘 탈 비행기는 세스나라는 2인용 경비행기였다. 남자 두 명이서 앉으면 어깨와 팔이 닿을 만큼 비좁은 공간이었다. 무더운 여름 창문을 내릴 수 없어 환기가 어려운 공간에서 우린 작은 환풍구에 의지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왼쪽에 교관은 오른쪽에 앉았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비행기인 만큼 내부는 많이 낡아있었다. 의자 커버는 다 뜯어져 있었고 누를 수 있는 버튼은 다 해져있었다. 과연 이 비행기가 날 수는 있을까. 


  걱정하는 나와 달리 교관은 아무렇지 않은 듯 비행준비를 빠르게 마쳤다. 오늘은 시동을 걸자 정면에 달린 프로펠러가 점점 빨리 돌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하는 내게 교관은 오늘이 처음이니 그냥 보기만 하라고 했다. 기억에 남지도 않을 만큼 많은 절차와 보고를 거쳐 활주로로 들어왔다. 정면으로 마주한 활주로는 정말 넓었다. 활주로 바닥에 숫자가 방향을 나타내는지는 이때 처음 알았다. 관제사에 허가와 함께 교관은 주저함 없이 속도를 올렸다. 비행기는 점점 빨라지더니 교관이 요크를 들자 활주로에서 뜨기 시작했다. 


  바람도 불지 않는 맑은 하늘이었지만 300 미터 위 하늘은 달랐다. 여기저기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가 탄 비행기를 쳤고 바람을 따라 좌우 위아래로 출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롤러코스터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느낌 같았다. 바퀴가 지면에 닿아 있지 않아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 잡혀 주변 환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교관은 그 와중에 비행기를 조작하며 내부 계기판과 주변 환경을 확인하고 관제사와 대화까지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이륙한 비행기는 활주로를 공중에서 크게 한 바퀴 돌아 착륙했다. 다시 한번 이륙을 위해 허가를 받았다. 아까와 같은 굉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달리는 비행기는 이륙하기 시작했고 교관은 내게 말은 건넸다.

자 이제 직접 한번 잡아봐.  


  떨리는 순간이었다. 강한 바람의 저항을 받으며 상승하는 비행기의 요크는 내 두 손을 강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꽉 움켜쥐며 온 힘을 다해 눌렀다. 마치 길 들여지지 않은 말위에 탄 느낌이었다.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교관은 두 손으로 요크를 쥔 내 손을 툭툭 치며 왼손으로만 잡으라고 했다. 처음으로 잡은 요크의 느낌은 상당히 민감했다. 자동차 핸들과는 달리 작은 변화에도 쉽게 움직였다. 요크의 반응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온 집중을 다했다. 일정 고도까지 다다르니 힘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조작이 가능했다.


  한숨 돌리며 밖을 보니 파란 하늘 아래 넓은 플로리다 바다가 보였다. 푸른 바다 위에는 작은 크루즈 몇 대가 떠다녔다. 바다가 얼마나 맑은지 하늘색과 비슷해 수평선이 모호했다. 그아래 긴 도로를 따라 마치 차들이 다니고 있었고 마치 장난감 자동차 같았다. 도심 속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았다. 


  비행기는 어느새 활주로와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고 교관은 내 요크를 가져가 착륙을 준비했다. 활주로 양 옆에 반짝이는 불빛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교관은 비행기와 활주로의 거리를 가늠하며 조금씩 속도를 줄이고 일정한 각도로 하강하고 있었다. 부드럽게 내려가는 비행기의 요크는 불어오는 바람에 평행을 유지하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내 활주로 위 숫자를 지나 착륙지점에 부드럽게 안착하며 마무리됐다.  그렇게 첫 비행이 끝났다.


  비행이 끝난 후에도 긴장이 풀리지 않아 왼손을 터질 듯 아팠지만 행복했다. 인생에 꼭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설렘이었다. 꼭 비행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넘어야 할 도전이 많다는 것이 기대됐다. 나중에 큰 민간항공기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앞으로 배울 많은 체크리스트와 절차 그리고 비행 중 끊임없이 반복되는 관제사와의 대화. 동시에 상황판단과 능숙한 비행기 조작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비행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이었다. 비행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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