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확신이 든다.
저 물건은 반드시 사야만 한다는 확신.
성분 하나, 디테일 하나하나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아니, 세상에. 이런 물건이 이제야 나오다니.”
내가 그동안 뭘 하며 살았나 싶은 기분까지 든다.
이 부분은 어떤 의도로 디자인됐고,
이 각도를 만들기 위해
장인들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이 좋은 성분을 추출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는지도 알게 된다.
정말 귀하다.
너무 귀해서, 이걸 소개해주는 쇼호스트가
천사처럼 보인다.
그 천사의 도움으로
나는 그 천상의 물건을 무이자 3개월 할부로 산다.
천상계 물건치고는 접근성이 좋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는다.
집에 있는 냄비의 곡선이
그 천상의 물건과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을.
이미 쓰고 있는 화장품에
그 귀한 천상의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도.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내가 갖고 있는
지상의 물건들에게 미안해진다.
아, 내가 너무 무관심했구나.
조금만 자세히 봤다면
나의 지상에 이미 천상이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TV를 보거나 책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아주 정성스럽게 '편집'되어 나올 때가 있다.
탄생의 신화부터 고난을 이겨낸 영웅담,
그리고 눈물겨운 피날레까지.
카메라는 유난히 다정하고,
글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그 삶에 조명을 비춘다.
그 매끄럽게 잘 닦인 타인의 서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 저런 게 바로 천상의 삶이구나 ‘
하지만 문득, 생각이 스친다.
TV속에 천상의 삶이 있다고 해서
지상의 내 삶이
할인 상품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 삶의 성분표도 하나하나 설명해 보고,
제작 비하인드 같은 걸 붙여본다면,
꽤 그럴듯한 이야기 아닐까.
나는 내 인생의 쇼호스트다.
장점은 최대한 정성껏 설명하고,
단점은 “사용에는 개인차가 있습니다”
정도로 넘기면서
무이자 할부 같은 특별 서비스도 줄 수 있다.
그러니까,
오늘도 애정을 듬뿍 담아
내 인생을 들여다본다.
지금 방송,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