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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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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Mar 04. 2022

우리는 난임부부입니다.

원래 모든 임신은 난임(難姙)이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나요?"

"5년 됐어요, 그런데 본격적으로 아기를 준비한 건 1년 정도 됐어요"

"난임이시네요,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 들어가셔야 할 거 같아요"


난임이라니, 난 내게, 아니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단 한순간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결혼기간 5년 동안 한 번도 임신테스트기에서 두줄을 본 적은 없었지만, 언젠간 우리에게도 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가볍게 검사나 받아보자는 마음으로 갔던 병원에서 난임부부 판정을 받았다.




내 나이 스물다섯, 남편 나이 스물여덟 일 때 우리는 그림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모음장이었던 나와 모임원이었던 남편은 밝게 웃는 서로의 미소가 좋아서 연애 5개월 만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당시 내가 일하던 회사는 급여도 많고 복지도 좋은 편이었지만 아이를 낳고 오래 다니기는 힘든 곳이었다. 육아휴직을 길게 쓸 수 없었고, 업무량이 많아 새벽에야 퇴근하는 날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함께 근무하던 언니들도 아이를 낳고 6개월~1년 뒤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던 내게 남편은 3년의 육아휴직과 2시간 단축 근무가 가능한 공무원 직업을 추천해줬고,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단란한 가정을 꿈꿨던 나는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우린 준비된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아이 계획을 내가 공무원이 된 이후로 미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지 2년 반 만에 나는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 발표가 나던 그날은 우리의 3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스물여덟, 남편은 서른 하나였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젊은 나이였다. 우린 그때부터 아이를 가질 준비를 천천히 시작했다. 보건소에서 산전 검사도 받고, 엽산도 먹고, 운동도 하며 몸을 만들었다.


그런데 아이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배란테스트기도 해보고, 산부인과에서 날짜도 받아보고, 배란유도제까지 먹으며 노력했지만 아무나 부모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번엔 혹시?'가 실망으로 바뀌는 날들이 쌓이면서  엄마가 되는 건 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병원에서 난임 진단을 받은 날 우린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관련 내용을 설명 듣고, 원무과에 결제를 하려는데 나와 같이 엄마가 되고 싶어 진료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론 매체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다는 뉴스를 연일 내보내지만 이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이곳에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아이를 원하고 있었다.


난임 병원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난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사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임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든 임신은 어려울 난(難)에 아이 밸 임(姙)이 아닌가 싶었다. 정신 승리라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임신이 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정말 이처럼 어려울 수가 없다. 견우와 직녀는 칠월 칠석이라는 정해진 날짜가 있기라도 하지 정자와 난자는 언제일지 모르는 그 날짜에 운명처럼 만나서 수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수정된 배아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춘 자궁벽에 제대로 착상을 하고 아기집을 지어야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이 모든 과정이 무탈히 이뤄질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자연 임신은 10%도 채 되지 않고, 인공수정 성공률도 10% 안팎이라 한다. 그나마 체외에서 수정시킨 배아를 자궁 안까지 넣어주는 시험관 시술이 그나마 성공률은 높은데 그래도 40% 안팎이다. 그러니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기보다는 원래 모든 임신은 난임이며,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와 남편도 처음엔 진단명을 듣고 놀랐지만 우리의 소중한 아이를 기다리는 과정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며칠 뒤 우린 정말 기적처럼 임신테스트기에서 처음으로 두줄을 보았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아기 천사가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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