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경 Jul 15. 2022

그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비혼 주의자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면서 엄마가 된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아이들을 원체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한 아이를 낳고, 또 한 아이를 낳고 그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내가 비혼 주의 자였던 건 엄마의 힘든 시댁살이를 봐왔기 때문이고 가부장적인 아빠를 봐왔기 때문이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며 엄마의 길을 따라가게 되어버렸다.


첫째 아이는 곧 20개월을 바라보고 있고, 둘째 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50일이 된다. 난 사실 아이는 하나만 낳고 싶었다. 삼 남매 중 첫째인 나는 항상 동생 편에 서는 엄마와 첫째기에 감수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기에 내 첫째 아이에게는 온전히 부모의 사랑을 그대로 다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래도 둘은 있어야 한다며 불임 수술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둘째가 생기고 만 것이다. 첫째만 키울 때까지는 육아라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편이 퇴근하고 나면 오롯이 아이 육아를 해주었기 때문에 남편의 퇴근시간이 나의 육퇴 시간이었다. 내 주변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이렇게까지 육아에 동참하는 남편이 없었기에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다. 둘째 임신을 알기 전까지


추석쯤이었다. 자도 자도 졸리고, 몸이 이상했다. 엄마도 명절에 집까지 와서 잠만 자냐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 집에 오고 나서 한 달에 한번 오는 게 일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아 남편에게 우스개 소리로 나 임신한 거 아니야?라고 농담을 건넸는데 남편이 혹시 모르니 그래도 테스트라도 해봐 했는데, 혹시나가 역시가, 설마가 결국엔 테스트기가 두 줄로 답을 해줬다. 임신을 확인하고선 남편에게 내 원망이 쏟아졌다. 첫째 아이가 아직 돌도 안되었는데 둘째라니. 아직 첫째 아이도 너무 어린 아기인데 순간 첫째 아이가 너무 짠해졌다.


여차저차 시간은 흘렀고, 둘째는 뭐든 금방 지나가는 것 같다더니 정말이였다. 심지어 임신초기에는 내가 임산부라는 사실마저도 순간순간 까먹기도했다. 첫째와 시간을 보내면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고, 첫째때 언제오냐고 노래를 불렀던 막달이 둘째때는 바람같이 찾아왔다.


첫째를 출산 할 때는 임당이 있었지만, 식단을 관리를 철저히 해왔기에 아기가 크지 않아 자연분만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예정일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서 유도분만을 시도하다가 진통이 걸리지 않고, 급격히 양수가 줄어 자연분만이 어려울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다. 그랬기에 둘째 역시 제왕절개를 해야했다. 브이백은 만 20개월이 지나면 시도는 해볼수 있으나 나는 18개월차이였다.


둘째는 38주쯤에 수술을 하기로 선생님과 날짜를 잡았는데 36주가 지난 어느 날, 진료를 보시던 선생님이 아기가 잘 노냐고 물어보시는데 생각해보니 워낙 태동이 엄청 심했던 아기가 태동이 좀 줄었던게 생각이나 말씀을 드리자, 갑자기 양수가 너무 없다며 당장이라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시는 선생님 말에 당황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지금 태어나도 아기가 호흡하고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오히려 뱃속에 있는게 아이가 더 호흡하기가 어려울거라고 했다. 그렇게 갑자기 둘째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50일쯤이 되는 지금 두 아이를 키우며 여러 많은 감정들에 휩쌓일때가 많았다. 그 많은 감정들은 내가 아는 감정도 있었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 그리고 뭔지 모르겠는 감정들이 있었다. 그래서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감정들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