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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비 Sep 07. 2023

갈림길

어제의 단상_#27

#27_갈림길


"저랑 잘 맞지 않은 곳 같습니다."


어느 날 대학원 공부를 그만두겠다며 친한 후배가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이십 년을 넘게 알고 지내던 후배였습니다.


"그래. 그렇게 결정했구나."


마흔이 넘어 진로를 변경하겠다는 결심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설득이든 축복이든, 어떤 말도 상처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많이 먹어. 언젠가 내가 그만두면 네가 밥 사."


사실은 언제고 한 번은 찾아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내내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형은 잘하고 계시잖아요. 저는 형 따라서 이만큼 온 거예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쩌면 이때부터였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후로 한 번도 그 친구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얼굴로 만나야 할까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그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 자주 생각납니다. 용기를 내볼까 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 도전을 지속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좋아한다'라는 이유는 때론 자신을 초라하고 궁색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무모한 도전에는 어김없이 가혹한 책임뒤따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패의 두려움을 견뎌낸 사람만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스스로가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삶의 갈림길에서 망설임만 쌓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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