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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비 May 15. 2024

교집합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67

#예순일곱 번째 밤_교집합


"아빠,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

"이거 말이야? 학교 숙제야?"


"아니요, 월요일에 하는 독서멘토링 수업 글쓰기 숙제예요."

"뭘 써야 하는 거야?"

 

"바나나에 관한 야기요"

"바나나? 주제는 따로 없어?"


"네, 없어요."

"그러면 일단은 네가 쓰고 싶은 걸 마음대로 써 봐."


"뭘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뭘 쓸 건지는 네가 스스로 정해야지."


아이가 열두 살이 되어서야 '진심으로' 내뱉은 말 '네가 스스로 해야지'. 지금껏 그러지 못한 건 마음이 약해서도 아이를 믿지 못해서도 아니었다. 진심을 담기에 아이와 나 사이의 '교집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집합 너머의 세계'를 인정하지 못했음을 뜻하기도 할 것이다.


"아빠는 서율이의 이야기가 궁금해. 선생님도 그렇지 않을까? 잘 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낙서하듯이 끼적여 봐."


우리의 삶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문제풀이의 연속이다. 때론 뒷걸음칠 때도 있고 제자리걸음일 때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매 순간이 선택이다. 그중에는 나아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도 있다.

이번이 그런 경우다.



"아빠, 숙제 다했어요."

"아빠가 한 번 읽어봐도 될까."


아이가 웃으며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 온다. 적어도 뒷걸음질은 아니구나, 안도하는 나를 느낀다. 다행이다.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으면 어쩌지, 모르겠다고 다시 찾아오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들을 쓸데없는 감정 낭비로 만들어 주어 다행이다.


"잘했어. 재미있게 잘 풀어썼어. <응답하라>의 바나나 에피소드로 시작한 건 좋은 생각이야."

"지난번에 엄마랑 아빠가 해준 이야기잖아요. 어렸을 때 바나나 비쌌다고 그래서 바나나 우유로 바나나를 알았다고."


"그래도 이야기를 잘 듣고서, 잘 기억했다가, 잘 풀어쓴 건 너잖아. 율이는 엄마, 아빠의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에 관한 너의 이야기를 쓴 거야. 그러니까 그건 네 거야."


내 말이 마음에 남았던 걸까.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긴 나도 잘 모르겠다. 지나온 시간에 깃든 겹겹의 이야기. 어디까지가 내 것이고, 어디부터가 네 것인지.

너와 나의 교집합, 그 경계는 어디쯤일까.



"근데 율아, 조금 전에 무슨 생각했어? 한참 멍하니 있던데?"

"아니에요. 그냥요."


"그냥? 혹시 비밀이야?"

"아니에요. 저는 아빠한테 비밀 없어요."


"정말?"

"정말이에요."


"아들, 비밀도 있어야지. 아빠는 율이한테 비밀 있는데."

"무슨 비밀이요?"


"비밀이라니까. 아빠에게도 율이가 알지 못하는, 교집합 너머의 세상이 있으니까."

"교집합이요?"


"응, 율이와 아빠 사이의 교집합."


요즘 들어 아이의 말과 행동에서 뭔가 모를 어색함을 느낀다. 무관심한 질문과 가벼운 침묵, 그리고 무뚝뚝한 말투. 대화의 리듬이 어긋나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순간이 다가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 지금이다.하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금 기대가 된다. 

이것은 우리 사이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세계가 교집합 너머로 커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음... 그러니까... 아빠 생각에는 말이야. 율이는 요즘 엄마와 아빠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밖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울타리요?"


"그래, 울타리."

"왜 울타리예요?"


"그러니까 엄마와 아빠가 알게 모르게 쳐놓은 생각의 경계선 같은 거.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그래서 울타리."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 거요?"


"맞아, 그런 거. 아마도 율이는 지금 울타리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에요."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며 깨닫는다. 사람은 사람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이제껏 깨닫지 못했을까. 누구에게나 이해할 수 없는, 교집합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왜 보지 못했을까. 교집한 너머에 펼쳐진 거대한 세계를.

나는 '저 사람 대체 왜 저래. 이해할 수가 없네'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습관성 불평불만'. 그 독기 어린 말들이 먹이를 찾아 지금도 세상을 어슬렁거리고 있지는 않을까. 이제와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지금껏 내가 내뱉은 오만과 편견의 말을 용서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짊어져야 할 짐이고 갚아야 할 빚이다.


"요즘 율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뭔가 예전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어떤 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뭐랄까. 리듬이 맞지 않는다고 할까. 물어야 할 때 묻지 않고, 답해야 할 때 답하지 않고. 사소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순간이 조금씩 잦아진다고 할까."

"아빠가 '우리 아드님이 왜 이러시지' 하실 때요?"


"(^^)응, 맞아."

"죄송해요."


"아니야. 그건 네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야. 그럴 때가 된 것뿐이야."


아이라는 거울에 나를 비춘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빌린다.

'율아, 교집합의 세계에 갇혀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돼. 교집합 너머에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도 없어. 율아, 알겠니?'



"율아, 울타리 너머를 보는 건 당연한 거고 자연스러운 일이야.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우주가 있으니까아빠는 '너'라는 우주에서 아주 작고, 희미하게 빛나는 별이면 좋겠어."

"왜요?"


"그건 아빠와 율이 사이의 교집합이 작아진다는 걸, 그만큼 너의 우주가 커진다는 걸 뜻할 테니까."

"이렇게요?"


"그래, 그렇게. 원이 커지면 원의 중심이 멀어지고, 원의 중심이 조금씩 멀어지다 보면 교집합이 작아지는 만큼 아빠의 빛도 희미해지겠지."


아이가 그린 두 개의 동그라미를 바라본다. 아이의 우주는 점점 더 커지고 나의 우주는 그대로다. 중심이 차츰 멀어지다 교집합 밖으로 벗어난다. 아름답다.


"언젠가 넌 울타리 밖으로 나가 아빠가 알지 못하는 비밀들을 만들어 갈 거야. 아빠는 어느 날 네가 낯설게 느껴진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거야."

"왜요?"


"그게 네가 만든 너의 우주일 테니까."

"아빠, 저는 어른이 돼도 다 말할 거예요. 제가 아빠 쪽으로 가면 되죠."


"싫어."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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