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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럭 Feb 16. 2022

서로 다른 그림 찾기 4

영미 아동도서에 대한 이야기 12

저는 출판 연도가 1년 이상 지난 영미 아동도서를 구입하면 국내에 번역서가 혹시 있을까 확인합니다. 번역서를 보다 보면 번역에 대한 이견이 있기도 하고 전체 내용이 개작 또는 축약본에 가깝다고 생각이 되면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는 해당 출판사와 번역가만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미 그림책을 소개하고 싶은데 원작 내용의 수준과 국내 독자의 연령대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일까? 한국어로 번역을 할 때 언어적 차이로 늘어난 단어들로 인해 책 안의 레이아웃(layout)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까? 어떤 이유인지 아직 알지 못하고 문학 번역의 수준을 논하기에는 저의 깜냥으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림책 원작과 번역서에서 눈에 보이는 차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그림책을 고를 때 본인이 그림책의 내용과 그림에 반한 적은 없으셨습니까? 한 발 더 나아가 그림책의 원작이 궁금한 적은 없으신가요? 무엇보다 자녀의 영어 학습을 위해 원작이... 그런데 실제 원작을 찾아서 번역서와 비교할 때 여러 방면으로 서로의 차이가 나는 작품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아래 사진 속의 책들은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글, 수잔 제퍼스(Susan Jeffers) 그림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입니다. 이 작품은 수잔 제퍼스 그림작가님이 20세기 미국의 대표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 작가님(1874-1963)이 1922년에 쓴 시를 가지고 그림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영시의 번역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지 고민하던 시절에 김안나 작가님의 '英詩로 배우는 영문법'(2001)에서 저는 이 시를 처음 접했습니다. 이후에 로버트 프로스트 작가님의 시들을 좋아하게 되어서 이쁜 선집(選集)이나 그림책들을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BESTLACLUB
출처: BESTLACLUB

윗 첫 번째 사진의 왼쪽은 원서, 오른쪽은 번역서입니다. 눈에 띄는 차이점은 책의 크기입니다. 하지만 실제 가장 큰 차이점은 책의 디테일입니다. 이 원작 그림책은 온라인 서점들에서 제공하는 북커버 이미지와 실제 책이 주는 아름다움 차이가 너무도 차이가 납니다. 좋아하는 시인에 대한 팬심(fan心)으로 이 책을 큰 기대 없이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책의 실물을 보고 무슨 보물을 발견한 듯한 감동을 받은 책이었습니다. 유산지 같은 반투명 책자켓(dust jacket)에 푸른색과 금색의 박찌기(foil blocking)와 엠보싱(embossing)이 된 제목이 적어져 있습니다. 그 책자켓 뒤에 비치는 책 커버는 마치 함박눈 내리는 창 밖 너머로 나무 한그루를 쳐다보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림책의 하얀 면지에는 번역서에서 볼 수 없는 은색 눈 결정(snowflake)들이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페이지마다 가장자리를 은색으로 색칠하여 마치 배 인쇄(fore-edge printing) 같은 느낌마저 주고 있습니다. 혹시 이 작품의 번역서를 보고 만족하셨다면 원서의 후가공(finish) 디테일에 다시 한번 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후가공 디테일에서 차이가 나는 그림책 원서와 번역서를 볼 때는 국내 도서 출판업계가 좀 안쓰럽습니다. 이런 디테일의 차이가 출판 기술의 부족이 아닌 결국 정가(price)의 차이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소개할 책은 마크 트웨인(Mark Twain) 원작, 필립 스테드(Philip C. Stead) 글, 에린 스테드(Erin E. Stead) 그림의 '올레오 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The Purloining of Prince Oleomargarine)입니다. 국내 온라인 서점의 베너 광고에서 '마크 트웨인' 원작이란 문구에 눈이 가서 구입했습니다. 이 책들은 번역서를 먼저 구입하고 원서를 찾아서 구입했던 저에게 드문 사례의 작품입니다. 저에게 이 책은 영어든 한글이든 제목이 입에 착 달라붙지 않았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닌가 봅니다. 혼북(Horn-book)의 저자 인터뷰에서도 책 제목을 장난스럽게 "정확하지 않지만 마크 트웨인의 미공개 베드타임 스토리?"("An unpublished bedtime story by Mark Twain? Not exactly.")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출처: BESTLACLUB

이 책들을 구입하고 가장 놀랐던 점은 원서와 번역서의 크기 차이였습니다. 사진의 왼쪽인 하드커버(hardcover)의 원서(2017년)는 가로 203mm, 세로 279mm 크기의 책입니다. 사진의 오른쪽인 번역서(2019년)는 양장본으로 가로 153mm, 세로 210mm 크기의 책입니다. 최근에 페이퍼백인 원작(2021년)이 출시되는데 번역본과 크기가 같습니다. 번역서와 원서(2017년)의 그림과 문단의 위치 등이 서로 일치하여 좋았습니다. 번역된 그림책들이나 삽화가 많은 책들을 보면 간혹 원작과 달리 그림이나 삽화가 글 내용과 서로 일치되지 않고 따로 노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원작의 그림책에서는 페이지 왼쪽은 그림을, 페이지 오른쪽은 글을 배치함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번역서에서는 이런 흐름이 맥없이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레이아웃에서 원작과 차이가 없는 번역서는 단어와 문장의 길이를 고려한 번역가님의 고심마저 느껴집니다. 그래도 여백의 미가 압권인 큰 사이즈의 원서를 보니까 가격이나 원가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이 번역서도 동일한 크기로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꼭 원서가 크고 번역서가 작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의 책들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원작, 리즈베스 츠베르거(Lisbeth Zwerger, 리스베트 츠베르거, 리즈베트 츠베르거) 그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입니다. 이전 사례와 다르게 사진에서 원서는 작고 번역서는 큽니다. 그런데 원래 이 두 책은 적절한 예시가 될 수 없습니다. 커버 이미지조차 다른 이 책들은 동일한 작품이 절대 아닙니다. 무슨 당연한 이야기를 하나 싶지만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연이 바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그림책도 '마크 트웨인'의 아동용 소설도 이를 위한 밑밥이었습니다.

출처: BESTLACLUB


국내 그림책의 모티브가 된 원서는 따로 있습니다. 원래 원서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본 내용에 리스베트 츠베르거 그림작가님이 삽화를 그렸습니다. 그 원서는 출판 당시 국내 그림책과 똑같은 크기와 똑같은 커버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원서의 2000년 출판작과 2007년 출판작 모두 절판이고 '리즈베스 츠베르거'의 그림이 있는 영어본으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Mineditionus' 출판사가 출판한 'Minedition Minibooks' 에디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즉, 한국에서 국내 작품이든 해외 작품이든 1990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메달 수상자인 '리즈베스 츠베르거' 작가님이 그린 앨리스를 볼 수 있는 책은 이 두 권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국내 온라인 서점들에서는  그림책의 참여자인 '한상남' 작가님의 역할에 대한 정보가 서로 다릅니다. 어디에서는 '옮긴이' 또는 '옮김'으로 표기하거나 다른 곳에서는 '편저'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의  커버에는 '한상남' 작가님의 역할을 '엮음'으로 적어져 있습니다.  생각이지만 '엮음'이란 단어가  상황에서 올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스 캐럴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상남' 작가님이 '리즈베스 츠베르거' 그림을 고려해서 글을 다시  것이지 '리즈베스 츠베르거' 원작(2000, 2007) 번역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루이스 캐럴' 원작, '한상남' , '리즈베스 츠베르거' 그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혼동을 주지 않는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해당 역할을 영어로 적었다면 축약본 책들에서 자주 보이는 'retold by'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 온라인 서점  곳은 '한상남' 작가님의 역할을 '옮김' 또는 '옮긴이'로서 알려주고 있어서  작가님을 번역가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국내 그림책과 영어 원서를 실제 비교하지 않으면 몇몇의 온라인 서점이 주는 정보로는  책이 전혀 다른 책이라는 사실을   없습니다. 우리는 책의 크기, 커버 이미지, 심지어 제목까지 달라져도 내용이 같은 사례들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면 국내 책이 원서의 크기와 커버 이미지가 다르지만 원작자와 그림 작가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원서의 번역서로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서지정보에서 작품 참여자의 정보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제공하는 정보제공자는 올바르게 해당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혹시 자녀들에게 어떤 영어 그림책을 소개해야 할지 고민되신다면 오늘 한번 아이들이 좋아했던 번역된 국내 그림책을 기억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책의 제목이나 작가를 통하여 원작을 찾아서 자녀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어떨까요? 국내 번역된 그림책들보다 정말 다양한 형태와 높은 품질의 원작 그림책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원작을 자녀에게 보여주기를 추천하는 이유는 이런 방법이 영어 어휘 추론력을 늘리는 실제 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로서 집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미국의 히스패닉 아동들에게 자신이 익숙한 스페인어 그림책과 같은 영어 그림책을 골라주고 읽도록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장애물 때문에 부모님들이 실제 원작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수고스러움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영어로 된 다양한 노출을 지속시키는 하나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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