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아동도서 대한 이야기 7
저는 부모님들이 우리 자녀들을 위한 영미 아동도서를 구매할 때 한 번쯤 생각해야 할 부분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이전에 다룬 포맷, 크기, 출판사의 국적 말고도 비슷한 듯싶지만 다른 차이를 만드는 요소가 무엇일까요? 책의 접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 다음의 사진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들은 제임스 매슈 배리(J. M. Barrie) 글, 로버트 잉펜(Robert Ingpen) 그림의 'PETER PAN AND WENDY'입니다. 아동문학의 고전 중 하나인 '피터 팬'을 호주의 대표적 일러스트레이터인 '로버트 잉펜' 그림작가님이 삽화를 그린 작품들입니다. 그는 아동문학에 지속적인 공헌을 한 글/그림 작가에게 격년으로 수여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Hans Christian Andersen Award)을 1986년 그림작가 부분(Illustration)에서 수상하신 세계적 그림작가이십니다. 그래서 이 분의 삽화로 만들어진 클래식 아동 도서들이 많습니다. 사진의 두 권처럼 이 분의 클래식 아동 도서들은 영국 런던에 있는 'PALLAZO' 출판사에서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제가 온라인 서점에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의 이름만으로 원하는 책을 구입하는 것처럼 곤란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물론 서로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이나 출판사명을 추가하여 검색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번처럼 이것들마저 동일한 경우 하나씩 확인하기 전까지는 제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책 커버의 섬네일(thumbnail) 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들의 커버 이미지는 제목의 배열만 서로 다를 뿐 서로 비슷해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몇몇 온라인 서점들은 제목과 함께 이 차이를 적어주기도 합니다. 제목에서 해당 차이를 알 수 없을 때는 역시 서지정보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제 힌트까지 드렸습니다. 혹시 위 사진에서 두 책의 큰 차이를 찾으셨나요?
이제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래 사진 속의 책들은 눈으로 보아도 확실하게 두께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책의 두께는 커버의 종류와 종이의 재질에 의해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두께의 차이를 크게 좌우하는 것은 역시 페이지 수입니다. 이 책들의 페이지 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왼쪽 책은 216 페이지, 오른쪽 책은 64 페이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드린 힌트에서는 제목 옆에 정답을 알려줄 때도 있다는데 페이지 수의 정보는 제목이 아닌 서지정보에 나옵니다. 물론 두께도 서지정보에 나옵니다. 그럼 오늘의 정답이자 페이지 수에서 이렇게 많은 차이가 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런 정보가 어떤 식으로 책 제목 옆에 나올까요?
바로 원본과 축약본의 차이입니다. 이 책들 중에서 왼쪽 책은 실제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실은 작품이고 오른쪽 책은 왼쪽 책을 기반으로 내용을 축약한 책입니다. 친절한 온라인 서점에서는 축약본임을 알려주기 위해 제목과 더불어 'Abridged', 'Abridged Edition 단어를 명시해줍니다. 정말 친절한 표기는 'Abridged Edition for young readers'입니다. 만약 제목에서 확인이 안 되는 경우 서지정보의 'Edition'의 항목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혹시나 이런 에디션(edition) 항목이 없다면 결국 페이지 수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고전 아동도서들의 축약본들의 사례는 포맷의 차이만큼이나 너무도 쉽게 다양한 책들로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개 원본과 축약본의 차이는 책 커버 이미지들에서도 쉽게 납니다. 축약본의 구매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려고 다소 극단적인 사례를 든 것입니다. 더불어 제가 이 책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하나 더 있습니다.
사진 속의 오른쪽에 위치한 피터팬의 축약본은 온라인 서점들에서 'Peter Pan and Wendy (Picture Hardback) : Abridged Edition for Younger Readers (Hardcover)'이란 제목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들이 소개하는 제목에는 작품의 실제 제목, 'Picutre Hardback', 아동을 위한 축약본이라는 정보, 책의 포맷 순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을 하겠습니다. 사용된 제목에서 'Picture Hardback'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림책을 영어로 'picturebook'이라고 하니까 이 오른쪽 책이 그림책이란 뜻일까요? 아쉽게도 이 책은 온라인 서점들이 제공하는 미리보기가 없습니다. 오로지 알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서지정보를 뿐입니다. 크기는 그림책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수치인 가로 216 mm, 세로 260mm입니다. 이 책의 페이지수는 64 페이지로서 일반적인 32페이지의 두 배이지만 그림책으로 무리가 없습니다. 책 커버와 서지 정보에도 '로버트 잉펜'의 삽화 또는 그림이 있다는 'Illustrated by Robert Ingpen'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정답을 알아보기 전에 왜 저는 이 책이 그림책인지 아닌지에 신경을 쓰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영어 그림책들이 영미 고전 아동문학의 축약본들보다 영어 독해가 더 쉽지 않을까 싶어서 그림책이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이 질문의 또 다른 의도는 그림이 있다고 해서 모두 책이 그림책인가입니다. 즉, 그림책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옴니버스(omnibus) 책이 아닌 총 216 페이지로 된 글이 많은 책에 일정 부분 그림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이 책을 그림책이라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개 이런 책들에 들어가는 그림을 삽화라고 부릅니다. 이 책은 삽화가 있는 아동 소설일 것입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면 '해리 포터'(일러스트 에디션)에 그림이 있다고 해서 이 에디션을 그림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경우처럼 총페이지가 64페이지로 된 책이라면 어떨까요? 물론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할 수 있게 하는 이론들이 있습니다.
이제 제가 'Picture Hardback'이란 표현에 당황하는 이유를 역시 'PALLAZO' 출판사에서 발간한 '로버트 잉펜'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주관적 견해입니다만 원작에 삽화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가장 많은 아동 문학작품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축약본을 포함한 만화, 그래픽 노블, 팝업북 등 다양한 각색본(adaptation)들이 가장 많은 원작도 이 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미 아동도서를 읽기 시작한 우리 자녀들이 '피터 팬'보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축약본과 그림책을 더 쉽게 만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래 사진도 왼쪽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작과 동일한 내용이고 오른쪽은 원작의 축약본입니다. 오른쪽 책 역시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면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Picture Hardback) : Abridged Edition for Younger Readers (Hardcover)으로 제목에 'Picture Hardback'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왼쪽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192 페이지에 대략 26,900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단, 축약 등의 기준에 따라 해당 수치는 달라질 수 있음) 이에 반해 오른쪽 축약본은 64페이지에 대략 11,100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페이지 당 단어수(words per page)를 살펴보면 왼쪽 책은 한 장 당 평균 140 단어, 오른쪽 책은 평균 175 단어가 됩니다. 오른쪽 책은 'Picture Hardback'이란 부제와 외형은 그림책 같은데 페이지 당 단어수는 원작과 동일한 왼쪽 책 보다 훨씬 많습니다. 오른쪽 책이 그림책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으신가요? 물론 폰트의 크기, 레이아웃, 페이지의 크기, 여백, 삽화나 그림의 크기 및 수량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실제 왼쪽의 원작에 사용된 삽화가 오른쪽의 축약본보다 좀 더 많은 편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그림책이라면, 한 페이지에 있는 단어들이 적어야 하지 않을까요? 확실한 느낌을 위해서 2022년 칼데콧 메달의 주인공인 제이슨 친(Jason Chin)의 'WATERCRESS'를 비교 대상으로 소환했습니다. 아래 차트를 통해 원작(사진 왼쪽), 그림책인가 싶은 축약본(사진 오른쪽), 'WATERCRESS'의 한 페이지 당 사용된 단어 수를 비교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축약본의 64 페이지와 'WATERCRESS'의 32 페이지의 차이에서 혹시 신경 쓰이는 분들을 위해 한 권 더 소환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축약본의 64 페이지보다 훨씬 많은 96 페이지의 Julie Kim의 "Where's Halmoni?"입니다. 아래 결과를 보면 이제 축약본 앨리스는 제목에서 'Picture Hardback'이 'Picturebook Hardback'이 아니겠구나라는 의심이 확실해집니다.
결론은 그림책이 아닙니다. 제가 책 속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가운데 외형과 'Picture back'이란 표현만으로 그림책이라고 믿고 구입한 것이 오늘 모든 이야기의 발단입니다. 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림책, 그림이 글을 압도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림책, 영어 읽기 레벨이 낮지만 그림의 수준은 높은 그림책을 원해서 구입을 했던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축약본은 우리 공교육의 영어를 기준으로 어휘 수준이 실제 원작의 어휘 수준과 비교하여 확실하게 쉬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역시 그림책은 살짝 안을 보고 선택해야 할 장르인가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온라인 서점에서 미리보기가 없으면 출판사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의도하지 않은 구매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합니다. 다만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쏟아지는 신간들 때문에 혹 떼러 갔다가 도로 혹 한 개를 더 붙일 때도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시간 여유되시면 영국, 호주, 뉴질랜드의 출판사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