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편순이의 기록
내가 일하는 편의점은 주말 오후 유동인구가 적은 지하철 역에 있다. 보통 이 역에 정차하는 지하철의 텀이 대략 10분 정도 된다. 고로 화장실에 가려면 잘 벼르다 그 사이에 후다닥 뛰어갔다 와야 한다. 카운터에는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가 적힌 A4용지를 올려두고 말이다. 셔터를 1/3쯤 내리고 다녀온다는 알바도 있지만 난 그냥 다녀온다. 생각보다 더 촘촘한 CCTV를 믿고 말이다. (그래도 일정 기간 합산해 본 도난 맞은 물건 금액이 약 10만 원 정도 한다니 도둑씨가 아예 안 계신 건 아닌 듯)
지하철 한 대가 도착한다는 알림음이 들리면 얼마 후부터 사람들이 개찰구를 우르르 빠져나온다. 화장실에 가려고 마음먹으면 일단 사람들을 잘 지켜본다. 다 지나간 것 같아도 간혹 무리에 끼지 않고 나 홀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분들까지 완전히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가고 나야 화장실로 뛰어간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개찰구를 통과한 한 무리에서 젊은 학생이 가게로 들어왔다. 젊은 손님들은 보통 구매도 빠르게 하는 편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학생은 달랐다. 신중했다. 그리고 음료면 음료, 과자면 과자가 아니라 전 매장을 골고루 살펴보며 '장을 봤다'.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 지하철 손님은 모두 사라졌다. 다음 지하철이 올 때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 화장실을 가려면 최소 언제까지는 출발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거의 다가왔다.
학생이 몇 가지의 물건을 들고 카운터로 왔다. '그래! 이제 이것만 계산해도 난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어'라는 희망으로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띡띡띡띡띡 다섯 가지 정도에 봉투까지. 봉투에 물건을 담으며 금액을 말해드렸다. 나의 바람대로 신용카드 딱 꽂아주고 깔끔하게 끝내주면 좋으련만 이번엔 달랐다. 우리 학생은 모바일 쿠폰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금액 내에서만 물건을 구입할 계획이었다. 그럼 대충 이거 저거 빼고 다시 시원시원하게 계산하고 끝내면 좋으련만 인생, 어디 그렇게 내 맘대로 될까. 그때부터 우리 학생과 나의 계산놀이가 시작되었다.
"이거 빼면 얼마일까요."
"그럼 이거 두 개 빼면 얼마일까요."
사람이 입보다 눈에 더 많은 감정을 실을 수 있을 텐데 내 눈빛은 그때 어땠을까.
계산놀이를 시작하며 난 화장실은 포기했다. 우리 학생이 야무지게 계산하며 꼭 필요한 물건과 덜 필요한 물건을 가르는 사이 난 오만 생각에 빠졌다. '그래 좀 더 참지 뭐. 설마 몇 번 이런다고 방광염 걸리진 않겠지? 2002 월드컵 때 광화문 응원 갔을 때 붉은 악마는 기저귀 찬다던데 나도? 디팬드가 용량이 되려나'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떠나는 학생에게 난 또 씩씩하게 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가 좋은 기분으로 가게를 떠나 남은 하루도 기분 좋게 지내길 바라면서.
나야 뭐, 다음 기회에 더 빨리 뛰어가면 되겠지. 그리고 힘 좀 더 주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