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나 Mar 12. 2024

토끼양과 사슴군 그리고 나

40대 편순이의 일기



"어서 오세요!"

"저..."

"뭐 찾으세요?"

"저... 오늘 일 배우러 왔는데요"



 다음 주부터 새로 일하게 된 알바생 교육을 내가 하기로 했다. 저녁 10시쯤 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웬걸 9시 30분에 온 모범알바생. 대학생이라던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려 보인다. 동그란 눈에 더 동그란 안경. 뭐부터 알려줘야 한담. 갑자기 정신이 없다. 체크리스트라도 좀 써둘걸. 

 일단 내가 일하러 와서 하는 것부터 알려줬다. 시재를 맞춰보고 매장을 한 바퀴 돌면서 진열을 손본다. 틈날 때마다 진열대를 채운다. 폐기상품을 체크한다. 마감할 때는 신문장부 적어서 밖에 내어두고 외부 진열장을 들여놓는다. 얼마 전에 와인진열장 옮기다 누가 14병 깨 먹었다니 특별히 조심할 것. 우리 토끼 같은 알바생, 찰떡같이 내 말을 알아듣는 모양새다. 


 

 우린 중간중간 대화를 나눴다. 토끼양은 책편집 일을 배울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면접 때 사장님한테 들었단다. 내가 출판사 한다고. '어머, 내가 그런 것까지 사장님한테 말했던가?' 대체 주접을 어디까지 떨었는지 모르겠네. 요즘은 영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토끼양과 '책, 출판' 위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역시. 취향이 비슷하면 얘기 자체가 즐겁다니까. 토끼양도 최종적으로는 글도 쓰고 출판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그렇구먼. 또 이렇게 한 명의 동지가 생기다니. 이런 만남, 취향의 나눔. 예상 못한 즐거움이다. 흔한 일은 분명 아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장님을 만난다. 사장님과 교대를 하기 때문이다. 토끼양은 예상외로 너무 잘해주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알바생, 사슴군 이야기가 나왔다. 사슴군이 한 6개월 후에 취업 때문에 알바를 그만 둘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사슴군에게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를 안다. "그렇군요"하며 사장님 말씀에 맞장구를 좀 치는데 예상 못한 다음 말을 들었다. "사슴군 전공도 글 쓰는, 창작 쪽이래요" 

 수상한 편의점도 아니고 뭐지? 토끼양, 사슴군 그리고 나. 우린 모두 글과 책을 사랑하는 건가. 사슴군이 글 쓰는 전공이란 말에 구미가 당겼다. '그가 뭐 좀 써둔 글이 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다. "저기 사슴군, 나 이상한 사람 아닌데 좋은 글 있으면 우리 전자책으로 한번 내볼까?" 



 아니다. 그만 두자. 혹시 '등단'의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를 사슴군이니까. 흑역사가 될지도 모르는데 오지랖은 여기서 그만. 그래도 은근히 이렇게 그에게 마지막으로 말해보고 싶다. 

"사슴군, 수익의 9는 사슴군, 1은 나. 어때?"

 인프피가 16개 MBTI 중에서 돈을 제일 못 번다고 한다. 인프피로서 나는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걸 하는 게 좋다. 참을 수 없이 좋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거. 

 차라리 화끈하게 사슴군 10 하고 나머지는 러닝 개런티로 제안할까? 지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있다. 이래서 돈을 제일 못 버는 건가.




 





매거진의 이전글 아저씨, 그 맥주 제가 쏜 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