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편순이
나는 두 번째 지원자였다고 한다. 내 뒤로도 지원자가 있었지만 어쨌든 내가 뽑혔다. 매니저님이 말해준 내가 뽑힌 이유는 역시 '경력'. 나의 지하철 역사 편의점 경험을 보는 순간 더 볼 것도 없이 나를 뽑았다고 한다. 어제 처음 근무를 시작했다. 8월 말까지만 일한다는 어린 친구와 나 그리고 매니저님. 일을 시작하자마자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 여기는 시스템화가 너무나 잘 되어있었다. 일하기 굉장히 수월하다고 느꼈다. 거의 모든 것이 정확하게 매뉴얼화되어 있었고 한눈에 알아보기 편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청결. 어디 하나 더러움이라곤 없었다. 이 매장은 시니어 분들을 고용하는 약간 특수한 매장이다. 어머님들이 어련히 부지런하실까마는 나는 그것보다 근무시간이 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은 보통 3, 4시간 근무하신다는데 누구든지 이렇게 짧고 굵게(?) 일해야 쓸고 닦고 할 체력이 있다. 솔직히 '사장님'들이야 장시간 근무해도 힘이 언제나 남아돌지만. 알바생이 6, 7시간씩 근무하면 그 자체로도 일단 지치기 때문에 어딜 쓸고 닦고 할 여력이 없다고 본다. 있다 해도 아마 대충 하게 되겠지. 그러니 알바 인원을 최소한으로 하면 각자의 근무시간이 길어지니 매장관리가 잘 안 될 수 있고, 단시간으로 알바를 여러 명 뽑는다면 매장관리는 어느 정도 될지 모르겠으나 결국 알바 입장에서 이 일은 돈이 별로 안 되니 쉽게 그만둔다거나, 알바생 수가 많기 때문에 점주의 직원관리가 수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결론은 이래도 저래도 쉬운 길은 없다는 거. 게다가 근무 시간이 긴 것 자체도 힘들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오래 일할까. 사장과 알바생의 위치가 바뀐 지 오래라 하지 않나. 힘든 일 빼주고, 알바생 힘든 거 알아주고 성심성의껏 대해주고 존중해 주지 않는 이상 오래 머물 알바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나저나 이번 편의점은 시니어분들이 일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어렵고 복잡하지 않도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덕분에 나는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편의점을 하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되겠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아주 간단한 건데, 일단 워크인에 들어가 음료를 진열할 때 맨 뒤에 진열되는 음료의 방향을 돌려놓는 것이다. 이 음료가 대체 뭔지 진열하는 사람이 이름을 볼 수 있게 말이다. 전에 일한 곳에서는 익숙해진 다음이야 어느 칸에 어느 음료인지 훤히 알았지만 근무 초반엔 대체 여기 들은 음료가 뭔지 보기 위해(매대에 음료가 한두 개 남은 경우) 워크인과 매장을 수차례 들락날락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라니.
그리고 담배, 담배에 번호가 붙어있다. 세상에나. 담배 이름이 와인 이름인 줄 알았던 거며, 외국인의 제대로 된 영어발음에 담배 이름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던 첫 번째 편의점의 지난날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하지만 3시간 근무해 본 결과 번호로 불러주는 손님은 없었다. 번호를 부르려면 손님 본인이 내가 원하는 담배를 일단 찾고, 번호까지 확인하고 말해야 하니 번거로울 수밖에. 아마 알바가 영 못 찾으면 그제서야 번호를 말해주거나 하지 않을까.
사실 나는 같은 편의점이라도 지하철 역사가 좋다. 일단 매장 근처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고, 제 발로 지하철을 타고 다닐 정도면 만취한 사람도 거의 없다. 뭐 요즘은 그렇게 만취하게 먹는 일도 드문 시대긴 하지만. 그리고 라면취식이 불가한 점. 저번 점포는 국물을 남기지 않는 조건하에 라면 취식이 가능했지만 여긴 아예 불가다. 음쓰통 자체가 없다. 그리고 인적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
두 번째 편의점에서 또 어떤 손님을 만나고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기대 반, 걱정 반.
하지만 기대에도 걱정에도 다 설렘이 있다.
모든 경험은 다 글의 소재가 되어 주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