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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rmovie Aug 15. 2023

나의 오랜 저주 받은 꿈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긴장감이 맴도는 황량한 뉴멕시코의 사막. 수많은 이들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동시에 설렘이 엿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운트 다운. 마침내 어두운 밤을 붉게 불태우는 폭발. 굉음과 함께 세계 최초의 핵폭탄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난다. 한 물리학자의 오랜 꿈이 실현되는 순간. 그 꿈은 폭발의 반발력과 함께 재앙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핵폭탄을 만들면서 ‘세상의 파괴자’가 된 오펜하이머를 다루는 이 전기 영화에서 트리니티 실험을 다루는 이 순간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과학자의 신념과 그로부터 비롯된 결과, 그리고 그 이후의 윤리 문제를 다루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 장면에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에서는 두 가지 주제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가 오랜 세월 꿈꿔온 이론을 실현하는 결정체는 바로 핵폭탄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핵폭탄은 세상의 파멸을 불러올지도 모를 살상 무기다. 과학자로 오랫동안 바라왔던 꿈과 그로 인해 발생할 죄책감의 감정은 사방으로 흩어진 이 영화의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계속해서 굉음과 폭발을 만들어 낸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영화는 한 편의 탁월한 심리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오펜하이머>는 관객들을 1945년 뉴멕시코의 사막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카운트 다운. 루드비히 고란손의 가슴 터질 듯한 음악과 함께 숫자는 1을 향해 가고, 그 끝에서 폭발은 일어난다. 그리고 치솟는 화염이 소리 없이 거대한 스크린을 수놓는다. 말 그대로 수놓는다. 이 영화는 그 장면을 그렇게 의도적으로 황홀하게 연출하고 있다. 


영화의 초반에 오펜하이머는 계속해서 환영을 본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양자역학은 그의 머릿속에서 파편처럼 쏟아지고, 그 환영을 관객들 역시 확인한다. 트리니티 실험 장면에서 보여지는 치솟는 화염은 마치 그 파편을 온전히(마침내) 하나로 뭉친 이미지처럼 느껴진다. 오펜하이머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은 그렇게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러나 이윽고 그 황홀경의 끝에서 이어지는 내레이션.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이 대사와 함께 이 영화는 아름답게 묘사하던 장면을 끝내고 차가운 현실을 보여준다. 이미지만으로 나열되던 폭발의 순간은, 이 대사와 함께 굉음의 사운드를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그렇게 이 아름다운 장면은 공포로 다가온다. 그리고 관객들이 핵폭탄의 폭발이 들려주는 거대한 굉음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사이, 이 영화는 바로 이어서 환호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객석에 앉은 관객의 공포와 스크린 너머 과학자들의 환호가 공존하는 이 순간은 <오펜하이머>의 정체성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세 시간 내내 충돌하는 <오펜하이머> 속 오펜하이머의 삶은 한 편의 핵폭탄을 보는 듯하다. 세 시간의 시간 속 첫 번째 한 시간은 오펜하이머가 양자역학을 열망하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합류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 과정은 하나의 핵폭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라는 공격과 의심 속에서 로스 앨러모스에서 자신의 이론을 실현 시키는 오펜하이머의 과정, 그리고 그 과정 끝 트리니티 실험으로 핵폭탄이 세상에 탄생하는 순간은 보이는 그대로 그 핵폭탄이 터지는 순간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핵폭탄은 폭발뿐 아니라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후유증을 남긴다. 1950년대 초 매카시즘 광풍의 한복판에서 공격받고 핵폭탄을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고통받는 오펜하이머의 모습은 핵폭탄 후의 후유증을 상징한다. 이 핵폭탄 같은 영화 속에서 놀란 특유의 파편화된 플롯은 끊임없이 핵분열과 핵융합을 일으키며 관객들을 자극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형벌로 그는 바위에 묶여 영원히 고통받았다.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톰 콘티)의 비밀스러운 대화가 마침내 관객들에게도 공개된다.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끔찍한 재앙을 초래할 것임을. 그리고 그로 인한 파괴가 벌써 시작됐다는 오펜하이머. 자신의 오랜 꿈이 저주받은 꿈이었음을 깨달은 그의 복잡한 표정으로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이제 영화는 그 시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과학자들에 대한 평가를 관객들에게로 넘긴다. 죄책감에 묶인 형벌을 받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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