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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빛 레오 Feb 01. 2024

행정실도 방학때 쉬죠?

더 바쁜 방학을 보내고 있어요.

학창시절 행정실의 기억은 이렇다. 별관 건물에 보충학습비를 내러 가면 그닥 친절해 보이지 않는 언니가 복도 작은 창문을 드르륵 열고 돈을 받아 수납처리를 해준다.  근엄해 보이는 행정실장님이라는 분은 늘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보셨다.

  나는 지금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를 한다. 졸업무렵 IMF가 터졌고 졸업생 취업률 제로인 상황에  생계를 위해 공무원이 되었다 처음 들어선 근무지는 매일 새벽5시에 집을나서서 12시가 되어야 들어오는 체력이 감당할 수 없는 곳이었다.  다시 시험을 치러 교육행정직 공무원이 된지 20년 하고도 2년째가 된다.

그  중 반 이상을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를 했다. 엄마는 얼마 전까지도 방학을 하면 "방학하면 쉬지?"하고 물으셨다. 몇년 전 코로나19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고 원격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요즘 출근 안 하지?"라고 묻는 것이 안부 인사였다.

 하지만 41조 연수를 내고 출근을 하지 않는 교사와는 달리 행정직은 1년 365일 근무를 한다.  동사무소나 세무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방학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학생들이 방학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더라도 학교 행정실은 계속 분주하다.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시설물 점검, 각종 지출 등 회계 처리 외에도 늘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온다.  오히려 학기 중 하지 못했던 대규모 시설 공사를 방학 중에 하기 때문에 더 바쁘다. 갈수록 세상이 복잡해져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인해 학교에 있는 유해물질도 조사해서 관리해야 하고 개학을 대비하여 학교 방역과 건물 내부 청결도 신경써야 한다. 온갖 시설 관련 시스템이 생겨 학교에 있는 변기 개수부터 형광등이 어떤 종류인지까지 모두 시스템에 입력해서 관리한다. 이렇게 업무의 가짓수는 계속 늘어나는데 내가 학교근무를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다름 없이 행정실의 근무 인력은 행정실장을 포함하여 세 명이다.

 내가 이 학교에  지 세 달이 되었을 때  막내인 8급 직원이 사직원을 냈다. 이직을 위해 대학원 시험을 작년부터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전혀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갑작스러운 사직에 내가 받은 충격은 컸다. 내가 뭘 실수했는지 며칠 고민하기도 했다. 정기 인사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후임자가 없을까봐 걱정도 되었다.  9급에서 시작해서 4급까지 승진을 하신 교육청의 어느 중요한 자리에 계시는 분은 해마다 사직을 하는 신규 직원들이 많은 이유가 직원의 어려움을 나몰라라 하는 행정실장 탓이라고 하셨다. 능력이 뛰어나셔서 학교 근무라고는 평생을 통틀어 2~3년쯤 하셨을 그 분이 요즘 행정실의 광경을 어찌 헤아리실까 싶으면서도 억울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공무원 급여가 이미 오래전부터 박봉이었음은 다들 알고 있기에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신입직원의 급여와 늦춰진 연금수령 나이와 국민연금 수준으로 전락한 수령액에 고물가까지 겹쳐  볼 것 없는 직장이 되었다. 세상이 복잡해지는만큼 민원은 많아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국민 세금을 축내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한다.

 신규 발령을 받으면 수도 없이 복잡한 시스템과 업무에 말 그대로 내던져지는 시스템도 문제다. 학교 행정실에 첫 발을 들여놓은 직원이 하는 업무는 주로 교직원 급여업무가 많은데 업무량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자신의 급여와 교원의 급여를 비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직원이 우리 행정실로 발령받았고 일주일쯤 지나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처음 하는 연말정산 업무에 바쁜 겨울방학 시즌까지 겹쳐 힘들텐데 나이 차이도 많은 동료 직원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한없이 예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만일 이 직원이 사직을 하겠다고 나에게 의논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말릴 수 없을 것 같다. 이 곳에서 참고 견딘 후에 너의 미래가 보상받을 수 있을거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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