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피는 꽃의 아름다움
사람들마다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다르다. 돈, 인정, 성취감, 기대에 대한 부응 등 여러 기제가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힘은 불안이다. 수능을 준비할 때야 다른 친구들도 모두 수능 공부를 했고,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으니, 수능을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와 여러 활동을 하면서 나를 계속 움직이게 몰아붙였던 것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즉 불안이었다. 불안했기 때문에 계획을 세웠고, 불안했기 때문에 눈을 낮춰 취업했고, 불안하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다. 고작 3년 차밖에 되지 않았지만 5년 차, 10년 차, 15년 차가 된 회사 선배들을 보니, 나 또한 저렇게 되어가겠구나라는 생각이, 그리고 그런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30대, 40대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내가 다른 것을 준비하게 만들고 있다. 솔직히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이 일을 계속하면 생활이 안정적이기는 하다. 내 기질 상, 상황이 급박하게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기도 하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시기를 그저 월급이라는 마약을 먹으며 보냈다가는 머지않은 미래에 후회할 것이라는 거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시기는 내가 도전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아닐까라고도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 노력을 마지막으로 투하해봄직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노력의 결과물이 그렇게 거창한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고작 공기업 취업이라는 목표이니 말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전력투구를 하고 싶어지는 그런 도전이 아닐까 싶다.
이전에 봤던 영상 중에 두 편 정도가 떠오른다. 하나는 '피터 딘클리지'의 베닝턴 대학에서 했던 연설이고, 또 하나는 DOHUN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제이미 바디의 드라마틱한 축구인생을 바탕으로 제작한 '늦게 핀 꽃의 아름다움'이라는 영상이다. 우연의 일치처럼 이 두 영상에 모두 29살이라는 나이가 나온다. 나도 29살이 된 올해 이 영상들이 나에겐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먼저, 피터 딘클리지의 연설부터 보자. 20대 초반 그는 6년간 그가 하기 싫어하는 일(데이터 프로세싱)을 하며, 인생을 보내오다 29살 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는 고백한다. 데이터 프로세싱 일을 관두면서 너무 두려웠다고, 특히나 변화가 두려웠다고. 또한 배도 너무 고팠다고. 그렇기 때문에 게으름을 절대 피울 수 없었다고.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작은 거인이 되었다. 나오는 작품마다 그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여러분께 남은 앞으로의 인생을 지금 당장 마주하세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마시구요.
그런 순간은 오지 않거든요.
남들이 여러분께 준비됐다고 외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마세요.
그냥 뛰어드세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을 만드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다.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뛰어들고, 실패하자. 그리고 다시 시도하자. 실패한다고 죽는 건 아니니 말이다.
두 번째, '늦게 핀 꽃의 아름다움'이라는 영상은 볼 때마다 가슴을 뛰게 만든다. 제이미 바디의 응원송이 계속 귀에 맴돈다. 그의 축구 인생은 매우 더뎠다. 남들이 축구에 온전히 집중할 때 그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축구를 했다. 그가 온전히 축구에 집중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이나 걸렸지만, 그는 그 자신을 증명하지도, 팬들에게 응원을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EPL 15-16시즌 그는 역사에 한 줄을 남겼다. 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나이는 29살이었다. 축구선수로서 29살은 황혼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이에 속한다. 모두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져가고 있는 순간에 그의 꽃은 늦게 피어오른 것이다. 그의 꽃은 어떤 꽃보다 아름다웠다.
더디더라도 한 번 해보자. 불안이라는 추진력과 노력이라는 원료를 통해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