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거짓말쟁이였다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날의 엄마를 위한 기록

by 작가 희와이

어린 시절의 나에게 엄마는 지독한 ‘거짓말쟁이’였다.


평일 내내 맞벌이 부모님의 빈자리를 지키며 내가 가장 고대하던 시간은 주말이었다. "엄마! 이번 주말엔 같이 장난감 사러 마트 가자", "엄마! 주말에 같이 옷 사러 나가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는 그 약속 하나를 이정표 삼아 일주일을 버텼다.


엄마는 늘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다. 하지만 정작 토요일 오후가 되면, 거실 바닥과 한 몸이 된 엄마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엄마, 가기로 했잖아! 빨리 일어나!”


심술이 난 나는 자는 엄마의 등 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일부러 텔레비전 볼륨을 높이며 시위했다. “그럴 거면 왜 간다고 했어? 엄마는 맨날 거짓말만 해!” 날카로운 내 목소리에 엄마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미안해, 딱 10분만 더 자고...”라는 힘없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그때의 내게 엄마는 약속보다 잠이 더 소중한, 이기적인 어른일 뿐이었다.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흘러, 나도 누군가의 몫을 해내야 하는 ‘사회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배운 첫 번째 진리는 주말의 잠이 곧 생존이라는 것이었다. 평일 내내 쏟아지는 업무와 긴장감 속에서 온 힘을 다하고 나면, 주말의 나는 그저 무기질 같은 존재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잠에 들 수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절실한 휴식인지 몸소 겪으며 깨달았다.


문득 그 시절의 엄마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보다 겨우 몇 살 더 많았을 그 시절의 엄마는 밖에서 일을 하면서도 자식들의 끼니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챙겨야 했던 사람이다. 엄마에게 주말은 나들이를 가는 활기찬 휴일이 아니라, 한 주간 지고 온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대피소’였을 것이다.


엄마라고 왜 자식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았을까. 예쁜 옷을 사주며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 다만, 육체의 한계가 마음의 의지를 앞질렀을 뿐이다. 아이가 먹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만을 생각할 때, 엄마는 자식들의 짐까지 보이지 않게 등에 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린 나는 잠을 이기는 법보다 참는 법을 먼저 배웠어야 했던 엄마의 고단함을 읽어내기에 너무도 미숙했다.


이제 나는 안다. 엄마가 했던 그 수많은 ‘거짓말’ 뒤에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 않아 마지막까지 쥐어짜 냈던 미안함과 고단함이 뒤섞여 있었다는 것을. 엄마는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라도 나를 사랑해 보려 애쓰다 끝내 잠에 진 것뿐이었다.


그때의 엄마를 안아줄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엄마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그때의 엄마에게 이제야 보내는 편지>

엄마, 이제야 보여. 엄마가 피로에 겨워 잠들어 있을 때 내가 옆에서 얼마나 철없이 시끄럽게 굴었는지 말이야.

그때의 나는 엄마에게 그 휴식이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지 도무지 알지 못했거든. 내 욕심이 먼저라 엄마의 잠이 그저 나를 방해하는 벽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 그 잠이 엄마에게는 일주일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생존줄이었다는 걸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으니까.

이제 나도 밖에서 치이고 돌아와 집안에 감도는 정적이 반가운 어른이 되어보니 알겠더라. 자식들의 짐까지 보이지 않게 지고 사느라, 엄마의 주말은 늘 그렇게 토막잠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는 걸.

그때 "거짓말쟁이"라고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엄마는 약속을 어긴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자신의 주말을 통째로 반납하며 버티고 있었던 건데 말이야. 이제야 엄마의 어깨 위에 놓여있던 그 무거운 짐들이 하나둘씩 보여.

거짓말쟁이가 되기 싫어서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뜨려 애쓰던 그때의 엄마를, 이제는 내가 따뜻하게 다독여주고 싶어.

정말 고생 많았어, 우리 엄마.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