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 딸, 소중한 편지는 잘 읽었어. 슬픔을 감추려고 담담히 써 내려간 그 마음이 어땠을지.. 요즘 많이 힘들지? 사실 힘든 게 당연하단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 견뎌내고 있는 거 같아서 안심이 돼. 엄마 눈에는 우리 딸이 마냥 어린 애인줄만 알았는데 많이 성장한 거 같아 보이네. 엄마 없는 빈자리가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쁜 마음먹지 않고 지내줘서 고마워. 급작스러운 이별이라 엄마가 딸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못다 한 말들이 많아.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지만 찬찬히 해볼게. 엄마는 말이야, 네가 너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그 사고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야. 그 일로 네가 무너지거나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단 한 번뿐이 젊은 시절을 놓치지 않길 바랐단다. 엄마는 이미 충분히 행복했고, 비록 너와 네 오빠와 함께 나이 들어가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괜찮아, 이렇게라도 네 오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뻐. 엄마가 움직이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마. 엄마는 그래도 너희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해. 가끔 내 손주들도 데려와 주면 더 좋고, 병원이라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의 출입을 제한하니, 병원 앞에서 산책하다가 가끔이라도 만나자꾸나.
엄마는 너희 덕분에 열심히 살았고, 정말 행복했어. 그러니 엄마 걱정은 하지 마. 아빠가 가끔 독불장군처럼 행동하실 때가 있을 거야. 워낙 심지가 곧고 어렵게 살아오셔서 그러신 거란다. 너희는 부족함 없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시는 거니까, 조금만 이해해 주겠니? 물론, 옛날 사람이라 지금의 잣대로 보면 이해가 안 가는 일 투성일 테지만, 아빠는 그게 최선이실 거야. 우리 딸, 엄마말 들어줄 거지?
엄마는 언제나 너희 선택을 이해하고 격려하고 응원한단다. 그러니 네가 맞다고 생각한다면, 네가 엄마 아빠에게 눈을 맞추고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밀고 나가렴. 너는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혹시라도 생각했던 거와 다르게 일이 흘러갈 수도 있어. 그럴 때는 아빠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아도 돼. 아빠가 다른 건 몰라도 가족하나만은 끔찍하게 생각하는 거 알지?
네 아빠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살아가시는 분이야. 부모형제에서 우리 가족으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말이야. 만약, 엄마 아빠에게 말하기 어렵고, 친구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꺼내기 어려운 일이라면, 그건 네가 생각해도 옳지 않은 일 일거야. 그렇지?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게.
엄마는 네가 어릴 적부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는 걸 알고 있어. 그 점이 오히려 너무 남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단다. 딸아, 너는 좀 더 이기적으로 너만 생각하면서 살아도 돼. 꼭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일 필요도 없단다. 너의 행복을 우선시하렴.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이야.
엄마는 너희를 낳고 키우면서 세상에 모든 행복을 느꼈단다. 물론 엄마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결혼생활 중에 힘든 일도 많았어. 사실, 너도 눈치챘을 거야. 너는 어린 시절부터 눈치를 많이 봤어. 그게 엄마아빠의 다툼 때문이었던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팠어. 초등학생때였을거야. 네가 귀여운 글씨로 엄마 서랍에 '앞으로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을게요. 이혼하지 마세요.'라고 적힌 편지를 넣어뒀더라. 어린 네가 이혼이라는 말은 어찌 아는 건지, 엄마 아빠가 못난 모습을 보여서, 어린 네가 마음속으로 얼마나 걱정을 했을지 눈에 보여서 너무 미안했어.
그 후로는 부부싸움 하는 모습을 되도록 안 보이려고 했지만, 종종 너희 앞에서 큰소리가 오갈 때가 있었지. 너는 엄마 아빠 그 사이에서 따로 중재하려고 노력하더라. 사실 그건 너의 역할이 아닌데.. 엄마 아빠가 너희 앞에서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많이 후회했어.
그래도 너희는 사이좋게 잘 지내 주었어. 너희 둘이 편을 먹고 엄마 아빠에게 의견을 낼 때마다 참 귀여웠단다. 둘이 싸울 때는 언제고 엄마 아빠가 다투니 둘이 편을 먹다니, 오히려 지금 남매의 우애를 보면 참 다행이지 싶어. 지금처럼 오빠랑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사이좋게 지내주렴. 엄마 아빠가 먼저 가게 되면 남은 너희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면서 살아가길 바라.
딸, 엄마가 오래오래 네 옆에 있어주고 싶은데 아마 그러지 못할 거 같아. 사실, 많은 수술과 오랜 병원생활에 몸이 지치고 상했다는 게 느껴지거든. 우리 딸, 나중에 때가 되면 엄마를 잘 보내줄 수 있지? 네가 엄마를 간병해 줄 때 엄마는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네가 내 옆에 있어서 행복했지만 젊은 네가 병원에서 24시간 내 옆에만 있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단다. 너보다 훨씬 더 무거운 엄마를 휠체어에 혼자 옮기는데 네 몸이 상할까 봐 너무 걱정됐어. 긴병에 장사 없다는데 우리 딸은 이런 엄마를 아직도 여전히 사랑해 주는 게 느껴져. 엄마는 오랫동안 아팠고 더 이상은 힘든 수술을 견딜 힘이 없어. 그러니 때가 되면 엄마를 편하게 해줘야 해. 엄마도 기적이 일어나서 우리 딸을 껴안고 오손도손 얘기하고 싶어. 엄마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몰래 눈물을 훔치는 널 볼 때마다 안쓰러웠어. 엄마 걱정은 너무 하지 마.
딸아, 너를 한없이 사랑만 해줘도 모자란 시간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후회되는 일들이 참 많아. 엄마가 많이 서툴러서 혹시나 서운했던 게 있었다면 이해해 주렴. 우리 딸, 엄마가 많이 사랑해.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더 오래 네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 사고로 인한 기억이, 엄마의 아픔이 너에게 상처로 남지 않기를, 잘 이겨내고 씩씩하게 살아가길 바랄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