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 말
처음, 엄마가 수술한 병원에 같이 입원했었어. 엄마는 중환자실에, 나는 신경외과 일반병실에, 엄마가 일반병실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내가 퇴원할 때까지도 여전히 엄마는 중환자실에 계셨어. 중환자실이라는 낯선 글자 앞, 보호자대기실에서 덩그러니 혼자, 환자복을 입고서 하루종일 면회시간이 되길 기다렸어. 한 팔에는 링거 주사 바늘을 꽂은 채로, 수액이 달린 거치대를 끌면서..
나는 거동이 가능해서 꼭 보호자가 상주하지 않아도 됐지만, 밤마다 아빠와 오빠가 번갈아서 함께 있어줬어. 나중에 들었는데, 아빠와 오빠가 내 옆에서 계속 밤을 지새운 건, 혹여나 내가 나쁜 마음을 먹을 까봐, 그랬던 거래. 아마 내가 매일 울고만 있어서 그랬나 봐. 거의 하루종일 울었거든. 그때는 울면서 기도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나중에서야 그때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어.
하루는 내 병실 옆자리에 있던 스물아홉 살 언니가 말을 걸었어. 평소에 항상 커튼을 닫고 있어서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날은 본인 이야기를 해주더라. 7개월째 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고,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뼈가 다 으스러져서 철심을 수십 개 박았는데, 그게 또 수술이 잘못돼서 계속 일도 못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입원해 있다고 말해줬어. 아직도 철심을 제거하지 못한 상태라, 너무 힘들어서 상담을 받았는데, 약도 같이 먹으니 살 것 같다고 나한테도 힘들면 꼭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고 했어. 지금 당장은 괜찮아 보이지만, 사실 아닐 거라고, 언제라도 아프면 꼭 가라고, 가도 된다고 말해줬어. 그 당시에는 '내가 왜 정신과를 가야 하지?'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뒤에 제 발로 정신의학과를 찾아가게 돼.
있잖아, 나는 엄마가 많이 아프신 상태라는 걸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고 힘들었어.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어떤 건지, 그전에는 전혀 몰랐어.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아픈 엄마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분명 나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알면서도, 부정적인 시선과 말로, 가슴에 비수를 꽂는 사람들도 있더라. 우리 엄마가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는데 말이야. 나는 내가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가짜 어른이었던 거 같아.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엄마의 부재를 느끼고 있거든.
담당 변호사분이 '이 사고로 가족분들이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이런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사고로 가족이 돌아가시면 주위 분들이 참 많이 위로를 해줍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아픈 상태로 계속 누워있게 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다 잊혀져요. 이 아픔은 가족분들만 계속 가지고 살아가셔야 하는 거라, 앞으로 더 힘드실 겁니다.'라고 하셨어.
오랜 시간 우리 가족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과정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진행형이야.
모든 걸 잃고, 남의 손에 의지해야만 하는,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는, 상태인 엄마의 상처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우리 가족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그저 묵묵히 엄마 옆에 있을 뿐이야. 엄마가 우리 곁에 있는 동안 조금이나마 덜 아프시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