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을 사들고 퇴근하는 아빠처럼
눈과 함께 겨울이 찾아왔다.
자취를 시작한 반지하에서 처음 맞이한 겨울이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습해서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겨울 반지하는 나쁘지 않다.
샤워할 때를 제외하고는 보일러도 안 틀고 두툼한 잠옷 입고 자면 그리 춥지도 않다.
이제는 내가 처한 상황보다는 이번 생에 내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나’라는 존재를 바꾸는 게 더 핵심 어젠다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 웃기지만 그렇다.
사람이 바뀌는 방법은 3가지뿐이라는 말이 있다.
1) 시간을 달리 쓰기
2) 사는 곳을 바꾸기
3)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
나는 올해 3가지 사항을 다 경험했다.
조금 성급하긴 했지만 새로운 회사에 취업을 해서 하루 일과가 바뀌었고(1번 사항),
지상에서 지하로 독립을 시작했으며(2번 사항), 각계각층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만났다(3번 사항)
출판업에 종사하면서 아르떼니 그린라이트니 별 다양한 종이 종류를 알게 됐고 도서 기획안 작성하는 법을 배웠다. 자취를 하면서 청년 복지 혜택에 대해 빠듯하게 알게 되었다. 또 일을 하면서 의사 인터뷰, 베스트셀러 작가 인터뷰, 화장품 회사 대표 인터뷰 등 취재를 다니며 얇고 넓은 인맥을 쌓게 되었다.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 기분이 드는 걸까?
여전히 겨울에 핸드크림 촉감이 싫어 맨손으로 다니다 보니 손이 거칠다.
그렇다 보니 회사에서 손을 닦고 가끔 세면대에 있는 공용 핸드크림을 바르곤 하는데, 이 핸드크림 냄새가 어쩐지 어릴 때 학교 화장실에 비치되어 있던 디퓨저향과 비슷해서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 시절 나는 여러 선택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는데 아직도 미성숙한 그 시절 아이 같다.
또, 우산 챙기는 걸 깜빡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갈 때가 많다.
아침에 그렇게 비가 왔는데 저녁에 비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빈손으로 집에 가버린다.
내일은 비가 안 올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도 쿨하게 두고 다니는 것이다.
사회인이 되고, 1인 가구가 되었어도 변하지 않는 '나의 속성'인 것 같다.
또 뭐가 있지
여전히 눈물이 많다.
슬픔에 초연해지고 잔잔한 어른이 되어가는 줄 알았는데 코끼리반 하율이보다 내가 더 자주 우는 것 같다.
자기 전에 법륜스님 말씀을 듣고 '맞지, 꽃이 진다고 슬퍼하는 건 내 마음이지. 꽃은 슬퍼하지 않는다'라며 해탈한 척하다가도 아침에 눈뜨면 펑펑 우는 어리석은 중생이다.
탈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눈물 많고 우산을 두고 다니는 내가 남아있다.
24.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