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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지 Dec 02. 2024

거의 100퍼센트 확률로 우산을 두고 다니는 내가 있다





통닭을 사들고 퇴근하는 아빠처럼

눈과 함께 겨울이 찾아왔다.


자취를 시작한 반지하에서 처음 맞이한 겨울이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습해서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겨울 반지하는 나쁘지 않다. 

샤워할 때를 제외하고는 보일러도 안 틀고 두툼한 잠옷 입고 자면 그리 춥지도 않다.


이제는 내가 처한 상황보다는 이번 생에 내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나’라는 존재를 바꾸는 게 더 핵심 어젠다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 웃기지만 그렇다.


사람이 바뀌는 방법은 3가지뿐이라는 말이 있다.


1) 시간을 달리 쓰기

2) 사는 곳을 바꾸기

3)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



나는 올해 3가지 사항을 다 경험했다. 

조금 성급하긴 했지만 새로운 회사에 취업을 해서 하루 일과가 바뀌었고(1번 사항),

지상에서 지하로 독립을 시작했으며(2번 사항), 각계각층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만났다(3번 사항)


출판업에 종사하면서 아르떼니 그린라이트니 별 다양한 종이 종류를 알게 됐고 도서 기획안 작성하는 법을 배웠다. 자취를 하면서 청년 복지 혜택에 대해 빠듯하게 알게 되었다. 또 일을 하면서 의사 인터뷰, 베스트셀러 작가 인터뷰, 화장품 회사 대표 인터뷰 등 취재를 다니며 얇고 넓은 인맥을 쌓게 되었다.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 기분이 드는 걸까?



여전히 겨울에 핸드크림 촉감이 싫어 맨손으로 다니다 보니 손이 거칠다.

그렇다 보니 회사에서 손을 닦고 가끔 세면대에 있는 공용 핸드크림을 바르곤 하는데, 이 핸드크림 냄새가 어쩐지 어릴 때 학교 화장실에 비치되어 있던 디퓨저향과 비슷해서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 시절 나는 여러 선택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는데 아직도 미성숙한 그 시절 아이 같다.



또, 우산 챙기는 걸 깜빡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갈 때가 많다.


아침에 그렇게 비가 왔는데 저녁에 비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빈손으로 집에 가버린다.

내일은 비가 안 올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도 쿨하게 두고 다니는 것이다.



사회인이 되고, 1인 가구가 되었어도 변하지 않는 '나의 속성'인 것 같다.



또 뭐가 있지


여전히 눈물이 많다.


슬픔에 초연해지고 잔잔한 어른이 되어가는 줄 알았는데 코끼리반 하율이보다 내가 더 자주 우는 것 같다.


자기 전에 법륜스님 말씀을 듣고 '맞지, 꽃이 진다고 슬퍼하는 건 내 마음이지. 꽃은 슬퍼하지 않는다'라며 해탈한 척하다가도 아침에 눈뜨면 펑펑 우는 어리석은 중생이다. 


 

탈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눈물 많고 우산을 두고 다니는 내가 남아있다.


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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