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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생 Mar 31. 2022

외로운 섬, 제주의 봄

 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지났지만 꽃샘추위 치고는 며칠 비바람이 게 불었다.

그리고서는 하루 잠깐 해가 빼꼼히 비추는가 싶더니, 그동안 시린 바람에 웅크려 있던 벚꽃 봉오리가 하나둘씩 팝콘을 튀기는 듯이 타닥타닥 하얗게 피어났다.

벚꽃은 그렇게 결국 만개한 채로 끝내 사람들을 자기 옆으로 불러 모은다.


 나는 2주 전부터 길을 걸을 때마다 벚꽃나무 가지 끝을 얼마나 많이 올려다보았는지 모른다.

가지 끝에 싹이 트고 있는지, 꽃망울이 피었는지, 얼마나 많이 피었는지를 수시로 살폈다.

 그리고는 바람이 분다던 일기 예보를 보며, 꽃이 먼저 필까? 바람이 먼저 불까? 비가 먼저 올까?를 생각했다.


 매년 벚꽃이 하얗게 피고 나면 이내 날씨가 꽃을 시샘하듯 바람과 비를 불러 하얀 눈처럼 꽃잎이 흩날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해는 얼마나 우리 곁에 머물까 하며 잠시 잠깐 지나갈 꽃을 향해 나도 모르게 마음을 쓴다.


 이런 꽃을 잠시라도 만나려 그렇게 하루하루 기다렸건만 어쩌다 딸이 오미크론에 확진이란다.

나 역시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격리되었고, 올해는 만개한 벚꽃을 잠시 잠깐 만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집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창밖을 보니 봄이 제대로 왔다 싶었지만 나에게는 외로운 섬, 제주의 봄이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소행성 B612'의 한송이 장미꽃이 떠오른다. 내가 아이가 더 아프지 않게 곁을 지키듯 어린 왕자는 새침한 장미꽃이 꺾일까 싶어 람이 불면 고깔로 씌워 보호하고 바람을 막아 주며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지구에서 만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세 시부터 벌써 난 행복해지는 거야"하며 길들여진다. 길들여지는 것은 마음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매년 춘분이 지나 벚꽃은 우리에게 어김없이 찾아온다. 나는 그 꽃을 기다리며 행복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사라져 또 아쉬워한다.


 사람들은 이 시기가 되면 유채꽃과 벚꽃의 조화를 보려고 이곳으로 너도 나도 모여든다.

모여든 인파 속에서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왜인지 더 쓸쓸해지는 것 같다. 금세 떨어질 꽃이며, 모여든 인파도 떠날 것을 알기에 외로운 섬이다.


 하지만 벚꽃이 지고 나면, 다시 푸른 잎 무성한 나무가 되어 우리 곁을 지켜주다 겨울을 보내고 또 꽃을 피울 것을 나는 안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야"라고 한 말... , "그래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바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처럼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다시 찾아올 것을 알기에 우리는 벚꽃에 길들여져 있고 길들여진 만큼 기다림은 아름답고도 외롭다.


 어른들의 꽃밭은 5000 송이 장미를 가졌지만 자신들이 찾는 걸 거기서 찾을 수가 없다.


 어린 왕자의 장미꽃 한 송이나 물 한 모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그걸 찾지 못하니 더 외로울 수밖에, 하지만 눈은 보지 못한다. 가슴으로 찾아야 한다.

 화려하게 만개한 벚꽃 속에서는 내가 찾는 것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 버티고 기다 끝에 결국 피어내는 그런 벚꽃을 바라보는 외로운 마음이 있기에 만개하기 전 꽃 봉오리가,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하얀 눈꽃이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제주이지만 이곳에서 머무르며 바라보는 자연은 쓸쓸하고 외로운 섬 제주이다.


다시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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