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처음 읽었을 때처럼 꽤나 시원한 마음이 들었다.
사회의 잘못된 시선을 꼬집는 위트,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묵묵하게 보내는 위로 같은 것들이 느껴져서였다.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곁들여진, 그러나 삶에 대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 많았다.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내가 요즘 왜 행복하지 않은 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서는 아닐까 싶다.
좋은 일이 생겨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행복감을 느끼는 건 그때 잠깐 뿐이다.
도파민, 엔돌핀이 확 솟았다가 꺼지는 느낌이랄까.
평균 심박수가 이미 낮아진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심장이 두근두근 뛸 일이 없다.
그래서 짧게 지나가고 마는 행복에 매달릴 게 아니라,
나를 압도하는 큰 근심거리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해주며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듯하다.
나의 '소소한 근심'에 집중해보자.
작은 근심이 많은 나는, 불행하지 않은 것이다.
요즘 나의 소소한 근심은,
"왜 이렇게 밥 하기가 귀찮지?"
"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지?"
"왜 이렇게 사는 게 재미가 없지?"
상대에게 너무 심한 일
결혼을 하고 나서 함께 보낼 미래의 시간들은 노화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노화의 과정을 겪는 생물체의 고단함과 외로움과 무기력함을 생각하면, 자신과 배우자에 대해 연민이 샘솟을 것입니다. 그렇게 연민을 가질 때, 사람은 비로소 상대에게 너무 심한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배우자에게 너무 심한 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내 결혼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아주 행복하게 해준다거나,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어준다거나
그런 거창한 약속은 지키기 어렵지만,
나의 소중한 한 사람을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심한 말과 행동을 삼가자고 생각했다.
조금씩 늙어가는 내 얼굴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듯이
그렇게 상대의 늙음을 함께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자체가 설거짓거리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타성, 나쁜 습관, 부질없는 권력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설거지 없이 깔끔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에서는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뜻인 '일신우일신'이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작심삼일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무척 부지런하고 성실했다기보단,
어떤 결심이 3일도 채 되기 전에 실패했더라도
그 실패에 대한 변명거리를 무궁무진하게 찾을 수 있었던 터다.
아침 운동에 실패했네... 수업듣느라 피곤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밤에 공부하려고 했는데 싸이월드 기웃거렸네...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하면 되지.
아마도 시간이 많아서였을까. 청춘은 낭비하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그땐 청춘을 낭비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으나
돌이켜보니 지키지 못한 결심이 많았고, 어느 날은 무책임했다.
그런데도 앞으로 계속 기회가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나에겐 시간이 넉넉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변명했던 것 같다.
그러니,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아예 떠올리지를 않았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나의 나약함이나 실패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일 또다시 기회가 열린다는 믿음이 강했나보다.
마흔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은 좀 다르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날엔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게으르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날엔 어김없이 후회한다.
내게 조금 더 엄격해진 걸까.
아니면 앞으로 남은 기회가 별로 없을 거라는 조바심일까.
하루가 멀다하고 타성과 나쁜 습관이 생기는 것이 사람이라는 말에 공감했다.
나이와 상관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신년계획을 세워놓고 며칠 안에 좌절하고
상처준 말을 후회하고도 비슷한 실수를 또 저지르곤 한다.
어쨌든 하루하루 타성과 나쁜 습관이 생기는 나를 오늘도 혼내본다.
오늘은 어제보다 잘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 시간에 대한 이러한 책임감과 노력이 보상받는 날도 오겠지, 하면서 말이다.
죽지 않으면 삶을 평가할 수도 없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진정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찾아옵니다. 그러면 미래에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기억나지 않는 삶은 물론 지루한 이야기겠지요. 그래서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듯,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은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돌아보고 평가하려면 그건 죽고 나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살아가는 상태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삶에 대해 평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나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기준은 바로 '이야기'라는,
한번 사는 인생, 기왕이면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남기는 게 좋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리고 이야깃거리 없는 지루한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는 말에도 격하게 공감한다.
아직까지도 내 삶의 활력이 되어주는 건
앞으로의 계획보다는 지나온 시간들, 기억들이었다.
교환학생이 되어 처음 국제선 비행기를 타러 가던 날, 싱가포르 좁은 골목에서 먹었던 딤섬, 남색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걸어가던 출근길, 구남친(현남편)과 퇴근 후 함께 마셨던 맥주 한잔, 실험 끝난 늦은 밤 대학로 골목길에서 느껴지던 초가을의 시원한 바람..
이 모든 이야기들은 새로운 도전과 용기가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바탕 열정이 지나간 후
다소 심심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가끔의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조금만 덜 심심하게 살고,
조금만 더 용기내보고 도전하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다시 써나가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