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에 끌리는 이유
모두가 A를 선택한다면
A가 좋아도 B를 선택하고 싶어진다.
참 이상했다. 나는 누군가의 눈에 띄어야 하는 성격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많이 받으면 그게 너무 불편했다. 대문자 I의 내향인의 전형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니 선택에 있어서는 항상 남들과는 다르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칭찬받고 싶었다. '너는 달라'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던 초등 저학년을 지나, 5학년 때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 사회에 흥미를 느꼈다. 마음먹고 달달 외운 것도 아닌데 교과서를 읽거나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나면 그 내용이 내 안에 오래 기억되곤 했다. 교과서의 내용이 스토리텔링처럼 나만의 이야기로 기억되었다. 시험도 잘 보고 칭찬을 받다 보니 자연스레 그 과목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작은 성취와 칭찬으로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친구들보다 조금만 잘하면 선생님과 부모님께 칭찬을 받고, 친구들에게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어린 나에게 친구들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꿈틀거리게 하는 주문과도 같았다.
공부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역시나 나는 같은 초등학교 친구들 대다수가 입학하는 집 바로 앞 중학교가 아닌,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다른 동네의 중학교를 선택했다. 남들과는 다른 선택인 동시에, 그 중학교는 학구열이 높은 동네에 있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대부분의 친구들과는 다른 나여야만 했다.
확실히 학구열이 높은 동네에 있던 중학교라 그런지, 처음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1학년이 끝나갈 때쯤부터 성적이 좋아졌고, 성적통지표에 써 주신 당시 담임선생님의 격려를 잊지 못한다.
"성실한 스마일의 미래가 벌써 기대됩니다. 집에서 많이 격려하고 칭찬해 주세요."
god 말고 블랙비트
선생님의 격려 문구를 본 이후부터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 와중에도 남들과는 다른 선택에 대한 나의 고집은 있었다. 공부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도 말이다.
당시엔 핑클, god, 젝스키스, SES의 시대였는데, 조금 마이너 하다면 클릭비 정도? 그런데 난 클릭비보다도 더 마이너 한 그룹을 선택해야만 했다. 지금은 없어진 보이그룹인 블랙비트가 나의 최애 가수가 되었다. 시험이 끝나면 일명 '공방'(공개방송의 줄임말)을 따라다니곤 했는데 수많은 메이저 그룹의 팬클럽을 지나 달랑 한두 줄 정도 배정된 나의 오빠들 자리에 앉아 검은색 펄풍선을 흔들었다. 아마 블랙비트가 god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면 난 블랙비트 오빠들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마이너함을 좋아하던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고교평준화가 도입되기 이전이라서 고등학교는 내가 선택한다기보단 성적에 맞추어 진학하였다. 중학교 3년 내내 성적이 좋았던 나는 지역에서 가장 입학성적이 높은 여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한 학교에서 20~30명 정도 여고에 진학했으니 자동적으로 마이너 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성적에 맞춰 학교를 선택한 것임에도 이것이 진정 남들과는 다른 선택이 맞냐는 고집은 부리지 않았던 것 같다.
7이 아닌 3이 되고 싶어 선택한 이과
고등학교 1학년이 되니 본격적으로 사설 모의고사를 통해 전국 등수도 대강 알려주고, 무엇보다 중요한 문/이과 선택을 해야 했다. 학년 당 10개 반이 넘어가던 여고에서 2학년, 3학년 언니들의 문/이과 비율을 보니 문과 대 이과 7:3 정도였다. 여고의 특성상 문과 선택 비율이 높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예체능 특기생 학생들도 자동으로 문과에 배정되었다. 또한 급작스럽게 난이도가 높아지는 고교 수학에 질려버려 일찌감치 수포자의 길을 택하고 이과에서 문과로 전향하는 사례도 꽤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난, 주저 없이 이과를 선택하였다. 그냥 7이 아닌 3이 되고 싶었다. 사실 중학교 때 내가 좋아했던 과목은 국어, 사회였는데, 그리고 나는 앞으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했음에도 중요한 진로 선택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었을 문/이과 선택 앞에서마저 나는 나의 적성보다는 남들과는 다른 것을 선택하고 말았다.
왜 대다수의 선택을 피해야만 했을까
돌이켜보면 이런 나의 고집은 나 자신보다 남들을 많이 의식하면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대다수가 하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써 '너는 특별해' '너는 조금 달라'라는 말을 듣고 싶었고, 이는 곧 남들이 날 어떻게 보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만 신경 썼다는 의미다. 내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잘할 수 있고 언제 재미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제쳐두고 다른 사람의 이목만 신경 썼으니 그 선택이 올바른 판단이었을 리는 없다.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쓰고 살기란 어른이 된 나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숙제지만, 어린 나에겐 이런 왜곡된 생각 자체에 대한 비판 의식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대체로 내 선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내가 아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 지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