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와 열 맞추기. 군대를 나온 것도 것도 아닌데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자꾸만 여기저기 손을 대야 했다. 라인에 맞춰 제대로 세워져 있는지, 라벨이 모두 앞쪽을 향하고 있는지, 색상 배합이 잘 어우러지게 정렬되어 있는지를 확인했고 손을 봤다. 만족스러울 때까지 그렇게 해야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했으니까.
완벽주의 그리고 강박증. 이 두 가지는 일종의 세트 같은 것이었다. 언제나 함께 발현되었다. 존재감의 크기가 어마어마해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그리고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예상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계획에서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심연에 숨겨져 있던 예민함들이 날을 세우기 시작하기에 빠르게 그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더 많이 찔리고 다쳐 피로 잔뜩 물들어갔기에 그 상황만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나의 기억으론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그랬다. 어떤 일을 하든 완벽을 기해야 했고, 어설프게 할 것이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전하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었고, 잘하지 못할까 봐 시작을 망설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을 때 오는 희열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세계 정복이라도 한 것처럼 어깨가 잔뜩 부풀어 올랐고 세상을 다 얻은 것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걸 맛보고자 완벽함을 추구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음을 홀랑 빼앗겨 버렸던 그때의 감각은 도무지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기에.
상냥하게 말할 줄 알았고 다정하게 마음을 품어줄 줄 아는 엄마였다. '오버스럽다', '과하다', '적당히 해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살가웠다. 완벽주의와 강박증이 얼굴을 내밀기 전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그것들이 고개를 들고 난 후엔 세상은 검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등장하는 낯선 얼굴의 엄마와 온통 시커멓게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어렸던 나의 아이들은 그 공포를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었을까. 작고 여린 어깨 위로 말없이 내려앉은 그림자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마, 나 너무 힘들어. 그만하고 싶어."
"그 말은 어제도 했잖아. 그래서 한 장도 풀지 못했고. 오늘은 계획한 거 다 해야 해. 자꾸 미루고 미루면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어."
9살 첫째와 수학 문제집을 펴고 우린 나란히 앉았다. 수학적 사고가 없다시피 한 아이를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매일 문제집을 풀다 보면 조금이라도 좋아질까 싶어 담임 선생님의 조언대로 아이와 문제 풀이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러나 야심 차게 계획했던 목표와는 달리 아이는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가기에 바빴다. 똬리를 트는 뱀마냥 몸을 배배 꼬았고 먹은 것도 없는데 자꾸만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자꾸만 내 계획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아이를 가만 두고 보지 못했고, 오늘의 일정만큼은 더는 뒤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 인내심의 한계였고, 아이는 낯선 엄마의 얼굴을 다시금 마주했다.
울며 겨자 먹기였다. 눈물 펑펑 쏟느라 문제 풀이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고, 문제집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별이 반짝, 마치 은하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난 꿋꿋하게 한 시간 동안이나 아이를 붙들고 있었다. 어른스럽지 못했다. 완벽주의와 강박증의 만남은 언제고 시너지를 발휘했다. 완벽에 집착하는 마음과 끝없는 불안은 늘 한편이 되어 나를 조여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들끓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고 나서야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고작 한 시간이었다. 별 소득도 없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왜 아이에게 소리를 질러야 했을까. 미안함과 자책이 뒤섞이며 머릿속이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었다.
"아까는 화내서... 미안해."
"엄마, 수학을 꼭 잘해야 하는 거야?"
"뭐든 잘하면 좋긴 하지."
“그냥, 보통이면 안 되는 거야?”
나는 아이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차마 하지 못했다. 보통으로 살아도 되는지 묻는 그 말엔 내가 평생 외면해 온 두려움이 담겨 있었으니까.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고, 완벽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배웠다. 그건 내가 만든 신념이었고, 아이에게까지 전가하고 있던 무거운 짐이었다. 아이의 눈동자에 비친 나는 사랑보단 성과를 우선하는 엄마였고, 그 모습은 내가 가장 닮고 싶지 않았던 누군가의 그림자와도 닮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다. 라벨이 어긋나 있어도, 하루 계획이 흐트러져도, 문제집에 별이 가득해도 그 순간마다 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 연습을 했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은, 결국 아이보다 나에게 더 절실한 말이었다. 아이를 위한 변화처럼 보였지만 실은 나를 위한 다짐이었다.
그렇게 나는 ‘보통의 삶’을 천천히 배워가기 시작했다. 시시하고 느슨한 하루들이 낯설긴 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보통으로 산다는 건, 내 모난 마음까지도 껴안는 용기였다. 그 하루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