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정함도 자란다

by 안개별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했다. 매일 밤이면 방전이 되어버린 배터리를 다시 충전하지만 이전과 동일한 스펙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여러 번 방전이 되어버리면 배터리의 수명이 닳아지는 이유에서다. 과거의 난 다정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포근히 안아주지도 못했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다. 잔뜩 예민해진 몸과 마음에는 작은 날이 서 있었다. 찔리면 피가 날 만큼 날카로운 서슬들이 자꾸만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만 좀 뛰라고 했지!"


몇 년 전 소파 밑을 청소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스테이플러 심 몇 개를 발견했다. 소파에서 자주 방방 뛰어대는 첫째 탓에 소파 바닥면에 박힌 철심이 아래로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간편하고 수월하게 위치를 바꿔가며 배치할 수 있게 만들어진 모듈 소파는 디자인 감성만 충만한 모델이었나 보다. 25kg이 넘는 아이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소파가 턱없이 작고 가벼웠다. 거실 맨바닥으로 탈락한 심 외에도 아래 방향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들을 몇 개 더 발견했다. 혹여 이리저리 구르다 밖으로 나오기라도 하면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겠다 싶어 첫째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이가 소파에서 뛰기 시작한 건 5살 무렵부터다. 왜 뛰는지는 알지 못했다. 소파에서 뛰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갓난아기를 키우면서 5살 첫째의 속마음까지 깊이 들여다볼 여유 따윈 부릴 수 없었다. 그저 무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나의 하루는 냉혹할 만큼 가혹했고, 매정하게도 냉담했다. 하루 24시간은 여지없이 빠르게만 흘러갔다. 그에 발맞춰 아이들을 위한 스케줄을 소화하고자 온 체력을 내던져야 했고 그마저도 부족한 시점이 찾아오면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이겨냈다. 그 대단한 싸움에서 난 결국 승리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갔다. 점차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갔다.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시간'이란 것이 주어졌다. 숨이란 걸 쉴 수 있었고 쉼이란 걸 가질 수 있었다. 이런 날이 나에게도 오는구나. 가끔은 너무 행복해서 불안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볼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 볼이 얼얼했다. 꿈은 아니구나.


잔뜩 날이 서 있던 칼날은 자연스레 무뎌졌다. 내가 알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꽤 너그러웠고 느긋하고도 넉넉했다. 당연하게도 그런 마음들은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자주 안부와 기분을 물었고 빈번하게 감정을 공유했다. 그 안에서 진심 어린 사랑이 싹텄다.



"딸, 궁금한 게 있어. 왜 자꾸 책을 읽다 말고 대체 왜 소파 위에서 뛰는 거야?"


의아했지만 궁금하지 않았던 물음. 별다른 이유 없이, 습관에서 오는 행동이라고 여겼던 탓일 것이다. 그동안 묻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평소처럼 "그냥."이라고 할 줄 알았다.


"아, 그게.. 책을 중간쯤 읽으면 그다음 장면을 상상하고 싶어져. 그래서 책을 덮고 머릿속에 그려봐. 소파에서 뛰면 더 잘 그려지는 것 같아."

"소파에 가만 앉아서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가만히 있어 봤는데 안되더라고."


예기치 못한 대답에 어안이 벙벙했다. 다음에 나올 장면을 상상하기 위해 책을 덮고 뛰어야 하다니. 문득 궁금해졌다. 얼마나 자주 그런 행동을 했던 건지.


"매번 그랬어? 책을 볼 때마다?"

"그건 아니고. 다섯 권을 읽으면 두세 번은 그랬던 것 같아.



다른 말은 일절 하지 못했다. 그저 대단하다는 말 밖엔. 책을 보며 좋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필사나 할 줄 알았던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던 지난 시간 속의 내가 참으로 멋없게만 보였다. 텍스트가 펼쳐놓은 사건의 현장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볼 생각은 왜 하질 못했을까. 이야기를 꾸며가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친 뒤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가 했던 구상과 비교해 보는 작업. 10살 아이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들로 가득 채워진 걸까.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상상하는 일이 이토록 가뜬한 걸까.


아이는 소파 위에서 방방 뛰며 아직 경험하지 못한 커다란 세상을 그려봤을 테지. 작은 두 발이 바닥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칠 때마다 머릿속에선 구름 같은 이야기가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을 테지. 나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 챙기느라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걸 잊고 있었다. 미안함이 밀려왔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묻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오랫동안 보지 못했을까. 바쁘다는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마음을 건네지 못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다짐했다. 아이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겠다고. 무심히 넘기지 않겠다고. 오늘은 왜 뛰었는지, 어떤 장면을 상상했는지, 묻고 귀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해야지. 다정함은 어느 날 갑자기 솟는 감정이 아니라, 이렇게 매일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걸 배웠다. 그 가르침을 오래 품어 보기로 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천천히,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을 건네보기로 한다. 그렇게 매일 난 다정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3화나를 사랑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