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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일

받고자 한다면 주는 것부터

by 안개별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아이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학교에서는 주 2회 일기 쓰기 숙제를 내주고 있다. 맞춤법이 정확지 않은 아이는 엄마에게 숙제 검사를 받듯 일기장을 내민다. 아직 사춘기를 경험하지 않아서 그런지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는 것에 개의치 않는 듯하다. 일기장에는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의 기록이 담겨 있기도 하고, 함께하지 못했던 순간의 경험들이 담겨 있기도 하다. 함께 있었지만 우린 다른 생각을 품기도 했고, 함께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갖기도 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그녀의 감정들이 너무도 소중해서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의 일기는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나의 꿈을 이룰 수 있게 최선을 다 할 거야.


모든 문장들이 '나'로 시작되었다. 이런 오그라드는 말들은 분명 선생님이 시켜서 썼을 테지. "자, 지금부터 선생님을 따라 하는 거예요. 나는 내가 좋아. 나는 내가 사랑스러워. 나는 내가 정말 멋져."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제각각의 목소리로 선생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쫑알쫑알 따라 했을 생각을 하니 생긋 웃음이 났다.


맞춤법 틀린 거 없냐고 아이가 물어왔다. 두어 개 틀렸다고 그 단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후엔 내가 물었다. 이거 수업 시간에 배웠던 거냐고. 아니라고 했다. 종종 머릿속에 떠올리곤 했던 생각들을 적어본 거라고. 첫째의 대답을 듣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한동안 정신이 나가 있었던 것 같다.


고작 열 살인 아이가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이 놀라워서. 꿈을 꼭 이루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서. 나의 어린 시절과는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아이가 참으로 멋져 보여서. 이런 마음들을 평소에도 지니고 살았다는 그 말에 넋이 다 나가버렸다.



항상 사랑받고 싶었다. 늘 그랬다. 부족했기에 아쉬웠고 가난한 이유로 목말라 있었다. 텅 빈 마음을 안고 공허하게 매일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여지없이 외로웠고 고독했다. 주는 것도 없이 받고자 했다. 사탕 2개가 있는데 "이건 내 것, 저건 네 것."이 아니라 "그거 다 나 줘."라고 말하고 있었다. 분별없이 욕심만 가득했던 나의 사랑을 그 누가 감당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외로움이 익숙해져 버린 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속절없이 흘려보내야만 했던 빈곤했던 시간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왜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을까. 나부터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받고자 하면 주는 일부터 선행해야 한다는 것을. 사랑을 주는 그 대상이 반드시 남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사랑을 나 스스로에게도 건넬 수 있었다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는 일. 생각만으로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귀까지 발갛게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마음 하나 먹는 게 왜 이리도 힘든지. 어려울 것 하나 없을 것 같은 그 일에 자꾸만 주저하게 된다. 어렵사리 입을 떼고 그토록 어려웠던 사랑한다는 한마디를 나에게 건네보았다.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 그들의 만남은 복잡 미묘하면서도 섬세한 감각들을 깨워냈다. 꿈틀거리며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온몸이 근질거렸다. 하마터면 재채기가 날 뻔했다. 재채기 대신, 나는 씩 멋쩍게 웃어버렸다.



또박또박 힘주어 써 내려간 아이의 일기장엔 따스함이 제법 배어 있었다. 그 글씨들을 찬찬히 어루만졌다. 손끝에 온기가 묻었다. 아궁이에 불이라도 뗀 듯 훈기가 밀려 들어왔다. 손가락부터 흉곽까지 서서히. 이내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하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마음이 말랑말랑 젤리처럼 만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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